소설가 한강 "인간의 고통이 사랑 때문이라면 그래야 한다"
소설가 한강 "인간의 고통이 사랑 때문이라면 그래야 한다"
  • 안선정 기자
  • 승인 2016.12.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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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치유의 인문학’ 강연 ③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안선정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지난 13일 광주를 찾았다.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최한 ‘치유의 인문학’ 강연을 위해서다. 5‧18민주화항쟁을 주제로 쓴 소설 ‘소년이 온다’ 강독과 함께 집필 뒷이야기, 강연 주제인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에 맞춰 소설가가 된 과거와 글쓰기와 관련된 현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마치 한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정리했다. 가독성을 위해 강연 내용을 세번에 나누어 게재한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그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라 했는데요. 왜냐하면, 이 소설은 저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제가 소년들에게,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저의 감각과 삶을 빌려드리는 형식으로 썼던 것이기 때문이에요.

불행히도 이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면 좋겠는데 일대일 대응까지는 아니지만, 사건은 모두 진짜거든요. 오히려 더 잔인했는데 소설의 용량을 초과해 쓰지 못했던 잔인한 부분도 있고요. 저의 자의식이나 저 자신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오면 굉장히 당황스럽고 그랬어요.

이 이야기는 어떤 글에도 썼는데요. 우연히 읽게 된 이스마엘 카다레 라는 작가의 작품 해설로 들어가 있는 에세이 비슷한 것이에요. 어떤 내용이었냐면 번역을 탈고한 다음 버스를 탔는데 이라크전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버스에 앉아서 아, 전쟁이 났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럼 이제 폭격이 있고 다 죽겠구나. 애들도 죽고 그렇게 생각하며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자신이 그 순간 생각했대요. “아, 내가 인간을 사랑하나 보다.” 그게 굉장히 놀라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에세이가 저를 구해줬던 것 같아요. 저는 제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없었거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계속 고통스러웠고요. 그리고 다 쓰고 난 지금도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게 우리가 인간을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거죠.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믿기 때문에 “이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게 되고 고통을 느끼는 거. 그런데 고통 속에 열쇠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 우리 마음이 많이 아팠잖아요. 모두가 그런 마음을 공유했는데 그건 이제 그래서 안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이 있는 자리에 언제나 대답이 있는 것 같아요. 고통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삶을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 같아요. ‘소년이 온다’가 인간의 참혹함과 잔혹함에서 출발해 인간의 존엄함으로 기어가려고 애쓴 거였다면 이제 제가 가야 할 곳은 사랑이 아닐까. 이 모든 것, 이 모든 고통이 사랑 때문이라면 그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참 어려워요.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고통이 존재하고 참혹한데 그걸 딛고 사랑을 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씩 애쓰면서 더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준비해온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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