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글을 쓴다는 것'의 원동력, 결국 글을 읽는 것"
소설가 한강, "'글을 쓴다는 것'의 원동력, 결국 글을 읽는 것"
  • 안선정 기자
  • 승인 2016.12.25 15: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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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치유의 인문학’ 강연 ②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안선정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지난 13일 광주를 찾았다.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최한 ‘치유의 인문학’ 강연을 위해서다. 5‧18민주화항쟁을 주제로 쓴 소설 ‘소년이 온다’ 강독과 함께 집필 뒷이야기, 강연 주제인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에 맞춰 소설가가 된 과거와 글쓰기와 관련된 현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마치 한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정리했다. 가독성을 위해 강연 내용을 세번에 나누어 게재한다.

                

강연을 약속하고 제목을 정해달라고 하는데 당시가 딱 “그러나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때여서 그 주제로 이야기하겠다고 했어요. 저에게 지금도 숙제는 그거에요.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이 뭔지? 그러므로도 아니고, 그리고도 아니고.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가능할까? 그런 고민들이요. ‘소년이 온다’ 이후에 그런 고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쓰고 더 이상 글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또 꾸역꾸역 무엇인가를 썼어요. ‘흰’이라는 작품은 아까 읽어드린 ‘죽지 말라’는 그 마음에서 시작한 책이에요. 죽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흰 것들,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힐 수 없는 흰 것들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또 다른 이야기를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의 정체성은 물론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첫 번째 정체성은 독자거든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이후부터지만 읽기 시작한 것은 훨씬 더 어렸을 때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니까요.

여러분은 책 많이 읽으세요? 저는 책 읽기가 주는 엄청난 힘을 많이 느끼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글을 쓰는 동안 슬럼프나 장벽이 느껴질 때, 내가 이러다 망하겠구나 느낄 때가 있거든요. 예전에 썼던 책을 보며 이때는 어떻게 이렇게 썼지? 이제 나는 안 되겠다 생각한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글을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많은 일들 가운데 산책이나 여행, 자전거 타기와 같은 일들이 있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1~2미터라도 가게 해주는 힘은 결국 항상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때는 책이 저와 아주 가까이 있잖아요. 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반복해서 읽을 수 있고요. 마치 제가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부분을 원할 때마다 계속 들려주는 그런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세상에 그런 횡재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도 글이 잘 안 써지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가장 도움 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어요. 권정생, 마해송, 이원수 이런 작가 작품에서부터 ‘모모’라는 작품을 특히 좋아해서 책이 닳도록 읽기도 했죠. 입시에 시달렸을 때도 계속해 책을 끼고 다니며 읽었던 기억이 나고요. 문예지도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우리 일상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 있잖아요. 친구에게도 하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 가족과도 하기도 뭣한,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 걸까?” “사는 일에 왜 고통이 따르는 걸까?” “우리는 왜 다 죽어야 할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 것들이 궁금한데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놀랄 테니, 무슨 일이 있냐고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죠. 아무하고도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잖아요. 그런 고민들을 사춘기 때 많이 했어요.

타인과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붙잡고 있을 때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서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이 나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다들 이렇게 질문하며 인간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약한 것이구나. 길을 잃는 존재이구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구나. 그런 걸 느꼈죠.

기억에 남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숙명의 페이지’라는 게 있어요. 어떤 페이지가 자신에게 중요하게 박혀 어떤 시작을 하게 하는 그런 구절 있잖아요. 제 사춘기 때 숙명의 페이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책이었는데 거기에 보면 자전적인 이야기인데,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주인공이 아일랜드 사람이니까 아일랜드어를 다시 배워야 않나? 영어를 버려야 하지 않나 하는 민족주의적 행동을 하는 동료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고민하는데, “내가 문제들로 고통 받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날아오를 거다”라를 대목이 있어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로스와 같이” 그 부분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페이지로 남아있어요.

짓눌려있던 열여섯, 열일곱의 상태. 무엇을 통해서든 그렇게 될 수 있을 수 있겠구나,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그리고 계속 시와 소설을 읽고 썼죠. 대학에 가서는 글이 너무 쓰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일단 제가 쓰는 문장이 마음이 들지 않았고요. 너무 둔한 것 같고 제 마음을 담기엔 불완전한 도구라고 느껴져 힘들었어요. 아무튼, 계속 쓰고 읽기를 반복했고 운 좋게 등단을 빨리하게 됐고, 아직도 이렇게 글 쓰는 생활을 하고 있네요.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 ⓒ Martin Argles/Guardian/Camera Press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프리모 레비 에요.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책이 있는데,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인데 이 책은 그 기록이죠. 작가가 아우슈비츠에서 나와서 처음 정리해 쓴 책이라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나중에 죽기 직전 과거를 반추하면 쓴 건데 두 작품 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일 프리모 레비의 책 중 여러 번 반복해 읽었고, 지금도 힘들 때 가끔 열어보는 책이 있는데 『주기율표』 라는 작품이에요. 그는 작가이면서 화학자인데 화학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주기율표’라는 책은 Fe, H처럼 원소 이름을 하나씩 놓고 한 장에 하나씩 그것과 관계된 자기 삶의 부분을 에세이이면서 소설로 쓴 작품입니다. 그 책을 보면 언제나 뭔가 배우게 되는 느낌을 받아요.

제가 외국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프리모 레비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아, 그래 아우슈비츠 생존자. 자살했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때 굉장히 화가 났는데,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자살 그사이에 아주 긴 삶이 들어있거든요. 이 사람의 전체 삶이 들어있죠. 아우슈비츠에서 나와 30~40년을 더 살았고 많은 책을 썼고, 사랑하며 아이들을 낳았고요. 존엄한 인간으로 살았거든요. 그게 저에겐 감동적인 증거로 다가와요. 물론 마지막에 안타까운 선택을 했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선택을 했는데 그런 폭력적인 생존자-자살 이렇게 연결되는 선을 무화시키고 지우는 책이 주기율표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증류다. 화학적인 과정은 그러니까 이 물질이 고체가 액체가 되고 액체가 기체가 되고 또 기체가 다시 응결되면 액체가 되죠. 그런 어떤 물질이 몸을 바꾸면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나는 흥미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 말이 뭔가 저에게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이 사람의 삶이 뭔가 고체였다가 액체였다가 또 기체였다가 다시 또 액체가 되었다가 그런 과정에서 변화하면서 살아냈던 거죠. 다 읽고 나면 더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데 요즘도 그 책을 읽고 있어요.

                                        '치유의 인문학' 강연 ③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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