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5·18 소설 쓰기 힘겨웠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 한강 "5·18 소설 쓰기 힘겨웠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 안선정 기자
  • 승인 2016.12.25 13: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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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인문학' 강연 ①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안선정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지난 13일 광주를 찾았다.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최한 ‘치유의 인문학’ 강연을 위해서다. 5‧18민주화항쟁을 주제로 쓴 소설 ‘소년이 온다’ 강독과 함께 집필 뒷이야기, 강연 주제인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에 맞춰 소설가가 된 과거와 글쓰기와 관련된 현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마치 한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정리했다. 가독성을 위해 강연 내용을 세번에 나누어 게재한다.

광주에는 지난 9월에 한 번 왔었어요. 비엔날레 포럼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어달라고 해서요. 또 다시 뵈러 왔네요. ‘치유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강연이어서 제가 여러분께 치유를 해드리고 가야될 텐데 과연 잘될지 모르겠어요. 광주에 다시 왔으니 ‘소년이 온다’를 읽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떤 부분이 좋을지 생각했는데 3장이고요. 당시 배경은 1985년입니다. 출판‧공연물 전부 다 검열을 거치던 시대에요. 3장과 4장의 주인공이 출판사 직원인데 자신이 교정교열 봤던 작품이 검열을 당해서 겁을 먹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지우는 것도 모자라 롤러로 완벽하게 페인트로 지워버린 가제본을 받아든 장면이에요. 요즘 시국과 관련 있다고 생각돼 읽어볼까 합니다.

보안사 군복을 입은 담당자가 출판사의 이름을 호명해 그녀는 창고로 다가선다. 어제 박 양이 가져온 가제본을 제출한 뒤, 이주 전에 제출해 심사가 끝난 가제본을 가지고 가겠다고 말한다.

기다리십시오.

살인자의 사진 액자 아래 반투명한 간유리가 끼워진 문이 있다. 그 문 안쪽에서 검열관들이 일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한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군복을 입은 검열관들이 책상 가득 책을 펼쳐놓고 있는 모습을 그녀는 상상한다. 담당자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삼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 사인하십시오.

담당자가 장부를 내밀었을 때 그녀는 주저한다. 방금 그가 창구에 내려놓은 가제본의 모습이 한 눈에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인하십시오.

장부에 서명한 뒤 그녀는 가제본을 받아든다. 말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집도를 끝냈고, 그 결과물을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창구를 등지고 그녀는 서너걸음 걸어갔다. 의자들 사이에 엉거주춤 선 채 가제본을 넘긴다. 한달 동안 그녀가 타이핑과 원문 대조와 삼교를 마쳐 거의 외우다시피 한, 이제 인쇄 절차만 남아있는 책이다.

그녀가 받은 첫 번째 느낌은 페이지들이 불탔다는 것이다. 불에 타서 검은 숯덩어리가 되었다.

검열과에 가제본을 제출한 뒤 정해진 기일에 찾아오는 것은 그녀가 입사한 뒤 매달 반복해온 일이었다. 서너군데, 많게는 여남은 군데 먹선으로 지워진 부분들을 확인하고 기운이 빠져서 회사로 돌어가 수정 작업을 거친 가제본을 인쇄소에 넘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 가제본의 도입부 열 페이지 정도는 절반 이상의 문장들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그 다음 삼십 페이지 가량은 거의 대부분의 문장들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그렇게 오십 페이지를 넘어가자, 선을 긋는 것이 수고스러웠는지 잉크에 담근 롤러로 페이지 전체를 검게 지워놓았다. 낱장들을 흠뻑 적신 잉크 때문에, 가제본은 삼각기둥과 흡사한 형상으로 부풀어 있다.

곧 부스러진 검은 숯 같은 그것을 그녀는 가방에 넣었다. 숯이 아니라 쇠를 넣은 것같이 가방이 무겁다. 어떻게 그 사무실을 걸어 나왔는지, 어떻게 복도를 통과해 사복경찰이 서 있는 정문을 빠져나왔는지 기억할 수 없다.

이 희곡집은 이제 출판할 수 없다. 처음부터 헛수고를 한 것이다. 앞쪽의 열 페이지에 드문드문 살아남은 문장들을 그녀는 머릿속으로 더듬는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거칠게 꿰매어진 문장들, 문단째로 검게 지워진 자리들. 우연히 형상을 드러낸 단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당신은.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그것은. 또렷이. 지금. 좀더. 희미하게.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숯이 된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칼을 찬 장수의 검은 동상을 등지고 멈추지 않고 그녀는 걷는다. 목도리를 눈 밑까지 올리고는 숨을 쉴 수 없어, 시큰거리는 붉은 광대뼈를 드러낸 채 걷는다.

                                                  『소년이 온다』 77~79쪽

이 소설은 80년 5월에 죽은 만 15살 소년 동호를 위한 것이에요. 1장과 2장은 80년 5월 당시를 그리고 있고, 그다음부터는 세월을 건너서 소년이 옵니다. 각 장의 화자들이 소년 동호를 기억하는데요. 기억하고 부르기 때문에 소년이 천천히 우리 곁에 오는 거예요. 에필로그에 이르면 현재가 되는데 어렴풋한 장막 같은 것을 걷고 넋의 걸음걸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걸음걸이로 소년이 오게 되는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5장에서는 5‧18 생존자인 선주라는 화자가 이야기하는데요. 순서대로 썼다면, 제가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썼을 텐데 마지막으로 쓴 부분이 5장이에요. 5장을 조금 다른 내용으로 썼다가 고쳤거든요. 이유가 제가 이 소설을 2012년 겨울에 자료 수집을 하면서 쓰기 시작했는데요. 3개월 정도 자료만 봤어요. 사실 제가 이 소설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선배 작가들이 워낙 훌륭하게 작업해 놓은 것이 있었고, 저는 광주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80년 1월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에 직접 체험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다 보니 광주 이야기를 쓰게 될 거라곤 짐작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였죠. 그러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이야기를 뚫고 지나야 하겠다는, 그렇지 않으면 글을 못 쓰게 될 것 같은 그런 시점에 도달했을 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됐어요. 광주 출신에 89학번이다 보니 그런 자료들을 접했던 세대라고 제가 많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자료를 읽다 보니 제가 잘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얼마나 잔혹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더 놀라운 것은 열흘간의 항쟁이 끝난 후에 얼마나 잔인한 폭력이 계속됐는지 잘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의외로 저 말고도 5‧18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 출간 후에 알게 됐어요. 자료를 읽는 기간 동안 제 안에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데 첫 번째로 실상을 알면 알수록 소설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야 하니까 제주 4‧3사건 자료도 찾아서 읽어봤고, 인류가 20세기에 저지른 무서운 일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읽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이구나 생각을 하게 됐던 시점에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됐어요.

몇 차례 다른 자리에서도 말씀드렸는데 그때 제가 읽는 것이 '시민군’이라는 작품인데 야학 교사로 일했던 박용춘 선생님의 마지막 일기에요. 그 일기가 기도 형식인데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런 내용의 일기였어요. 당시 인간의 폭력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것을 알게 돼 소설을 시작하게 됐어요. 갑자기 어떻게 이 장을 배열해야 할지 써야 할지 알게 됐죠. 쓰는 동안 악몽도 많이 꿨고요. 초고가 나오고 두 번째 탈고했을 즈음 출판사에 빨리 책을 내자고 부탁했을 정도였어요. 출판사에서 5월 즈음 책을 내자고 하더라고요. 출간까지 시간이 있어 2014년 1월부터 원고를 다시 읽어보며 5장을 고쳐 쓰게 됐어요. 5장 고문 생존자 선주의 이야기를 쓰며 제가 많이 물러서서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이 되어보자는 생각에서 다시 썼고, 출판사에서 원고를 재촉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돼 버렸죠. 원고를 빨리 주지 않으면 5‧18을 넘겨 책을 내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5월 19일 출간하게 됐어요.

선주라는 생존자의 목소리로 “죽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행사가 광주 트라우마 센터가 주관하는 행사인데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조사하다 알게 됐는데 5‧18 생존자의 자살률이 11%나 된다고 들었어요. 아주 무서운 숫자죠. 그래서 죽지 말자는 이야기를 그분들과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어 마지막을 쓰게 됐죠. 그 부분을 읽어볼까 합니다.

언니를 만나 하고 싶은 말이 나는 뭔지 몰라.
내가 언니에게 등을 돌리던 순간,
심장에 시멘트를 붓듯 언니에 대한 모든 것, 복잡하고 뜨겁고 너덜너덜한 모든 걸 단번에 틀어막으려던 순간,
그 순간을 감쪽같이 건드리지 않고 언니를 만날 수가 있을까.
그렇다한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병동을 등지고 당신은 걷는다. 어렴풋한 박명이 내리기 시작하는 잔디밭을 가로지른다. 두 손을 나란히 뒤로 돌려, 쇠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받쳐든다. 어린애를 업은 것처럼. 포대기 아래 손을 받쳐 달래는 것처럼.
내 책임이 있는 거야, 그렇지?
입술을 악 문채, 눈앞에서 일렁이는 파르스름한 어둠을 향해 당신은 묻는다.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예리한 것으로 거푸 그어 붉은 선이 그어진 것 같은 눈으로 당신은 걷는다. 응급실의 불빛을 향해 빠르게 나아간다.
아니,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 뿐이야.
허락된다면.
그게 허락된다면.
장례식장과 응급실로, 병동과 병원 정문으로 갈라지는 도로를 밝히던 외등들이 일제히 꺼진다. 도로 가운데 그어진 흰색의 직선을 따라 당신은 얼굴을 들고 걷는다. 선득한 빗방울이 당신의 정수리에, 당신의 운동화가 내딛는 아스팔트에 떨어져 번진다.

죽지 마.

죽지 말아요.

                                            『소년이 온다』 176~177쪽       

이렇게 해서 이 소설을 끝마치게 됐어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제 삶이 조금은 바뀐 것 같아요. 쓰는 도중에도 바뀌었고 다 쓰고 난 다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책의 자장에서 제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꿔요.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는 좀 더 직접적인 무서운 폭력의 꿈을 꿨다면 소설이 완성된 다음에는 다른 느낌으로요. 2014년 여름에는 어떤 꿈을 꿨느냐면 책만 나오면 악몽도 안 꾸고 많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거죠. 2014년 꿨건 꿈은 제가 무덤 많은 산을 걷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여기가 바다 들어오는 곳이니까 빨리 피하라는 거예요. 왜 바다가 들어오는 땅에 이렇게 많은 무덤을 썼지? 어떻게 하지? 이쪽에 있는 무덤을 빨리 옮겨야 하지 않을까? 당장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어떡하지? 이미 무덤 아래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다가 깨고요. “아, 이게 광주 꿈이구나” 생각했죠. 이 이야기를 쓰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조금씩 약해질 순 있겠지만 껴안고 가야 하는 몫이 됐구나. 그런 걸 느끼고 있어요. 지금도 여러분과 ‘소년이 온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마도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치유의 인문학' 강연 ⓶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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