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녀들’이 되고자 했던, 이연주 시인의 삶
[리뷰] ‘그녀들’이 되고자 했던, 이연주 시인의 삶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11.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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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이연주는 단순히 ‘그녀들’을 동정하거나, ‘그녀들’의 비참을 보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녀는 정말로 ‘그녀들’이 된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 그녀는 ‘그녀들의 육체들’이 된다. 얻어맞고 착취당하고 파 먹히고 그리고 피를 빨린 뒤에 도시의 하수구에 내던져지는 혼이 없는 살주머니. 그 육체들은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일 뿐이다. 이연주는 그 육체들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적 자아는 스스로 매음녀가 되어 생의 바닥을 지렁이처럼 기어간다.”

김정란 시인은 이연주 시인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연주 시전집』의 해설로 실릴 뻔한 글 일부다. 여기서 ‘그녀들’은 이연주 시인이 생전에 깊게 관심을 가졌던 매음녀들을 가리킨다. 시인은 그녀들을 동정하거나 보고하는 것이 아닌 ‘그녀들’, 나아가 ‘그녀들의 육체들’이 되고자 했다. 시 쓰기의 한 방법으로서의 ‘타자 되기’ 방식을 통해 총체적 폭력을 ‘불온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은빛 물고기』,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등 다양한 색깔의 책을 펴내온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이번에는 이연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시전집을 펴냈다. 두 권의 절판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991, 세계사), 『속죄양, 유다』(1993, 세계사)의 합본, 복간본인 동시에 시인이 생전에 활발히 몸담았던 ‘풀밭 동인’에만 발표됐던 시 24편과 시극 1편이 단행본의 형태로 처음 수록됐다.

이연주 시인

책의 모든 디자인 작업은 시인의 남동생 이용주 씨가 맡았다. 최측의농간이 등기가 말소된 주소지를 찾아다니며 뜬소문에 불과한 말과 서류의 부스러기들을 부여잡고 허탕 치길 수차례일 때 극적으로 만난 그는 신기하게도 북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흔쾌히 출간에 동의했고, 생전에 시인과 나눴던 교감과 추억, 시인이 남긴 작품의 울림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완성했다.

책의 표지는 남동생의 의견대로 ‘올블랙’이다. 이는 시인이 말하던 ‘전깃불이 감춘 어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 「신생아실 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총과 칼로써 네 몸을 무장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는 맨몸으로 기도문 한 구절 없이 버티는 용기와 저항의 힘이란다. 기도문이란 다만 죽은 자들을 위한 문장일 뿐이니까 (중략)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이연주 시인은 환한 전깃불이 감추고 있는 커다란 어둠을 말하기 위해, 가려진 어둠 그 자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세상을 등진지도 20여년이 흘렀지만, 그가 속삭이는 구절들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 이연주 시전집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펴냄 | 252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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