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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 “아십니까, 한글 덕에 디지털 강국된 거”- 『… 한글 28대 사건』 김슬옹 교수

[정리=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무릇 한 분야를 파고들어 높은 식견을 이룰 때 그를 ‘달인’이라 하기도 하고 ‘전문가’라고 하기도 하고 ‘도사’라고도 부른다. 이를 순우리말로 하면 뭐라 해야 하나. ‘지킴이’라는 말도 있으나 좀 부족한 것 같고…. 그러나 ‘지킴이’라는 말만큼 풍족한 말도 없을 듯 하다. 알아야 지키고 지켜야만 아는 것을 후대에 물려줄 것 아닌가.

김슬옹. 한글운동을 하는 한글지킴이다. 우리말과 글의 슬기롭고 옹골찬 옹달샘이 되고자,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토박이말로 이름을 지었다. 그게 철도고등학교 1학년 때다. 지금은 대학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한글 및 세종 강연하러 전국을 다닌다.

최근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을 낸 김슬옹 교수를 이메일 인터뷰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읽기 운동을 널리 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 참, 동아리라는 말도 백기완 선생과 함께 처음 썼다고 알려졌다.

- 교수님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주로 성장했으며, 학교는 어디를 다니셨는지요.

“어려서 수원에서 33년을 살았습니다. 수원안룡초등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수원중학교 때는 문예부장 등을 하며 열심히 산 기억이 납니다. 가난 때문에 철도 공무원이 되고자 서울 용산에 있던 철도고등학교 업무과에 입학하였고 1학년 때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 연합회(지도교사 오동춘)에 가입하여 한글운동을 시작, 벗들과 함께 외솔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외솔을 흠모하게 되었고 외솔과 같은 우리말과 글의 슬기롭고 옹골찬 옹달샘이 되자고 결심하며 이름도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토박이말 이름(슬옹)을 스스로 짓게 되었습니다.

실업계 특목고로 대학 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외솔 학맥을 잇겠다는 한마음으로 버텨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연세대 ‘한글물결’ 동아리와 최기호 선생님께서 지도하시던 ‘전국국운동대학생연합회’에서 활동하며 김석득, 문효근, 남기심 등 여러 스승님으로부터 다양한 학문과 함께 외솔 정신을 배우게 된 것이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된 바탕이 되었습니다.

- 하시는 일이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인하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로 있으며 세종학, 훈민정음학에 대한 대중 강연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 부원장으로서 우리 말글살이 바로쓰기 일을, 한글학회 연구위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문위원,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으로 각종 우리말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세종대왕생가터복원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 한글의 우수성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교수님이 다시한번 설명해 주십시오.

“한글의 우수성은 세종대왕이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정인지서에서 말했듯이 비록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등 천지자연의 소리를 모두 적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뿐만 아니라 중국의 한자음을 비롯하여 외국말까지도 정확히 적을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하층민의 소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양반 지식인들이 한문 책을 더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문자 기능이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수한 것은 문자가 매우 과학적이고 보편적 원리에 의해 설계되었고 가장 간결한 도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 최근 어떤 기사를 보니 한글이 몽골 어떤 문자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 세종의 꼼꼼하고 치밀한 태도로 볼 때, 그 당시 조선에 알려진 모든 문자를 세밀하게 연구했을 것이고 그 당시 대표적인 음운 문자였던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나 몽고의 파스파 문자도 많이 참고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세종이 훈민정음에서 초성자와 종성자를 같게 만든 것은 파스파 문자에서 초성자와 종성자가 같음을 보고 참조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고하되 아예 차원이 다른 문자 체계와 효율성을 지닌 독창적인 문자로 끌어올렸다는 점입니다.
문자 핵심 원리를 살펴 보십시오. 파스파 문자가 한글 자음처럼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나요. 모음에 천지인 삼재의 이치를 담았나요. 자음자는 기본자를 바탕으로 가획 원리, 모음자는 기본자의 합성 원리로 확장했는데 파스파 문자가 그런 가획, 합성 원리를 일관되게 규칙적으로 적용했나요.”

- 한글 전용론자신가요. 그렇다면 왜 그런 주장을 하시나요. 우리말은 한자어가 많아 한자를 알아야 어휘력이 늘고 문장 이해력이 높아질 수 있다 하는데요.

“한글만 써야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자를 섞어쓰면 평등한 문자 생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대학 교수를 가운데 몇 %가 한자 섞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실제로 10%도 안 될 것입니다. 대학 교수들조차 이러할진대 일반인들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신문에 쓴 칼럼을 소개합니다.”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는 네 가지 상식을 거스르는 나쁜 정책이다. 첫째, 교과서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읽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자를 병기하면 교과서는 한자 학습서로서의 기능이 높아져 독서 매체로서의 본래 기능을 잃게 된다. 

둘째, 낱말의 의미는 문맥이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이해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자를 병기하면 읽기 흐름을 특정 한자의 뜻으로 몰아가 적절한 독해를 방해하게 된다. 지금 거의 모든 대중 출판물은 한글 전용으로 나오고 있다.
 
셋째, 한자어도 우리말이라는 상식에 위배된다. 한자병기론자들은 한자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한자 병기는 오히려 한자어를 배타적으로 배척하는 행위다. 우리말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한자어라면 우리말글 공동체에서 한글 단일 표기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학습’이라는 한자어와 ‘배우다’라는 순우리말 모두 소중한 우리말이다. 왜 ‘학습’을 굳이 ‘학습’(學習)이라고 표기해 이질화된 낱말로 홀대하려는 것인가.

초등 교과서의 학습 주체는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즐기게 하는 것이 우리 교과서의 가장 상식적인 존재 이유다. 교과서 한자 병기는 이러한 네 번째 상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교과서 주체인 어린이들의 읽을 권리를 짓밟는 어른들의 지독한 편견이다.>

- 언론에서 교수님을 한글운동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글운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고요, 동아리라는 말도 처음 보급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운동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한글운동은 엄격하게 말하면 한말글운동입니다. 한글은 문자만을 가리키지만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말(한말)을 포함한 우리말글 전반적인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글이 중심이기 때문에 흔히 한글운동이라 부릅니다.

한글운동은 한글을 둘러싼 언어모순 해결을 통해 사람다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의 근거는 세종 서문에 나와 있습니다.세종대왕이 직접 쓴 서문에는 한자로는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없어서 우리말에 적합한 새 문자를 만들었다는 자주 정신,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도 쉬운 문자로 마음껏 소통할 수 있게 하려는 애민 정신,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우리 글자를 쉽게 익혀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실용 정신 등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의 지독한 편견입니다. 언어의 의미는 문맥이나 맥락을 통해 이해하는 것인데 마치 문자에 뜻이 들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치매’는 ‘癡?’라고 쓰는데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치매’가 그냥 어리석다는 뜻은 아닌데”

- 한글운동이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한국인의 얼 등과 연관이 있겠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고등학교 때 경험을 말씀 드리죠. 제 원래 이름이 김용성(金庸性)인데 제 정체성은 ‘김용성’에는 있지만 ‘金庸性’에는 없거나 부족합니다. 한국은 한국 사람다운 것이 정체성이고 그런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게 주체성이고 그것이 얼입니다. 한자로는 우리말을 제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정조가 심환지 대감한테 한문 편지 쓰면서 오죽하면 ‘뒤죽박죽’만 한글로 썼겠습니까? 만일 15세기에 한글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뒤죽박죽’이란 말에 담겨 있는 우리 겨레의 소중한 정서, 전통 등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 한글운동하시는 데 성과는 얼마나 있다고 보시나요. 한글이 혹시 훼손되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겠죠.

“2005년 국어기본법으로 한글 반포 559년만에 온전한 한글전용 시대를 연 것이죠. 한글전용 실천으로 구글 슈미츠 회장 말대로 한글 덕에 디지털강국이 된 것이 최대 성과라고 봅니다. ‘개무시’ 등 신세대들의 신조어 남발은 한글 훼손 문제는 아니고 우리말 훼손 문제입니다.

한글이 훼손되는 경우는 다양한 기호를 섞어 암호처럼 쓰는 경우이죠. ‘ㅎㅎㅎ’와 같이 초성만 쓰는 경우도 한글 훼손이 아니라 한글의 장점을 살린 것입니다. 길도우미 네비에서 초성 검색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 한글 장점을 살린 뛰어난 활용입니다.”

- 젊은이들이 요즘 스마트폰 등에 줄임말, 신조어 등 외계어 수준의 말도 많이 씁니다. 한 말씀 부탁합니다.

“언어의 소통이요 배려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언어는 맥락이기도 합니다. 언어의 창조성이나 다양성 차원에서 ‘훈남’처럼 긍정적 의미로 줄임말을 사용하는 건 오히려 권장해야 할 말만들기입니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헐’로 줄인다든가 은어 수준의 외계어로 한글을 파괴하는 건 분명 잘못된 것이고 고쳐야 합니다.”

- 한글운동을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시나요. 또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요.

“지금은 훈민정음 해례본 읽기 운동을 하고 있고 이 운동을 더욱 널리 펴나갈 생각입니다.올해는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간행한 지 570돌이 되는 해입니다. 1446년에 세종이 직접 펴낸 원본은 1940년 일제강점기에 발견돼 극적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하여 간송본이라 부릅니다. 이 간송본은 지난해 있는 그대로 복간돼 첫 판이 몇 달 만에 거의 매진되었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이제 전 인류가 인정한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해례본은 모두 66쪽으로, 이 가운데 8쪽(마지막 쪽은 빈 면)은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입니다. 정음편의 세종 서문에 ‘유통(流通)’이란 말이 나옵니다.

15세기 말(우리말)과 글(한문)이 유통이 안 되니 한문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유통(소통)하지 못하고 그래서 모두가 유통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례본이 우리 학계와 교육계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현재 해례본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전문가가 많이 나올 리 없죠. 이 책은 다양한 학문이 녹아 있는 융복합서이기에 학제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선정한 인류 고전 100권에도 포함되지 않았을 정도로 푸대접받고 있습니다.

이제 해례본 반포 570주년을 맞아 해례본 읽기와 교육 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해례본 핵심 내용인 음양오행의 조화로운 자연 철학과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의 합리성, 지식과 생각의 자유로운 소통의 평등성 등을 함께 새겼으면 합니다.”

- 끝으로 꼭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십시오.

“지식과 정보를 쉬운 문자로 평등하게 나누라는 세종의 정신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망할 때까지 이 정신을 거부했습니다.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같은 실학자들조차 이러한 정신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로 인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가나 문자를 통해 실용화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학살의 도구로 사용한 일본이 잘못이긴 하지만 그걸 막아내지 못한 참혹한 역사는 누가 책임일 것입니까? 지식인들의 세종 정신 거부는 직무유기입니다.”

세종대왕 창제부터 해례본 발견까지 ‘한글 28대 사건’

김슬옹 김응이 함께 펴낸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은 한글 창제 당시의 28자에 착안해 한글을 둘러싼 중요한 이야기를 28가지로 추려 엮은 것으로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한글 1대 사건> 1443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다
■<한글 2대 사건> 1444년, 몇몇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한글 3대 사건> 1446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포하다
■<한글 4대 사건> 1449년, 하급 관리들이 한글 벽서를 쓰다
■<한글 5대 사건> 1453년, 궁녀들이 한글 편지로 사랑을 나누다
■<한글 6대 사건> 1459년, 세조 임금이 한글 불경책을 펴내다
■<한글 7대 사건> 1460년, 《훈민정음》으로 고급 관리를 선발하다
■<한글 8대 사건> 1475년, 인수대비가 한글 여성 교육책 《내훈》을 펴내다
■<한글 9대 사건> 1481년, 그림책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하다
■<한글 10대 사건> 1485년, 종로 시장 상인들이 한글 투서로 권력을 비판하다
■<한글 11대 사건> 1504년, 연산군이 한글 사용을 금지하다
■<한글 12대 사건> 1506년, 한글을 아는 여성을 나라의 인재로 뽑다
■<한글 13대 사건> 1527년, 최세진이 한자 학습책 《훈몽자회》를 펴내다
■<한글 14대 사건> 1539년, 한글이 중국에 알려지는 것을 막다
■<한글 15대 사건> 1586년, 원이 어머니가 죽은 남편에게 한글 편지를 남기다
■<한글 16대 사건> 1593년, 임진왜란에서 한글 담화문이 빛을 발하다
■<한글 17대 사건> 1608년, 허준이 한글 의학책 《언해태산집요》를 펴내 산모와 아기를 구하다
■<한글 18대 사건> 1608년, 허균이 한글 소설책 《홍길동전》을 펴내다
■<한글 19대 사건> 1670년, 장씨 부인이 한글 조리책 《음식디미방》을 펴내다
■<한글 20대 사건> 1756~1759년, 어린 정조가 외숙모에게 한글로 편지를 쓰다
■<한글 21대 사건> 1790년, 전기수가 한글 소설책을 읽어 주다 낫에 찔려 목숨을 잃다
■<한글 22대 사건> 1889년, 미국인 영어 교사 헐버트가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내다
■<한글 23대 사건> 1894년, 고종이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선포하다
■<한글 24대 사건> 1896년, 서재필이 한글 신문 《독립신문》을 펴내다
■<한글 25대 사건> 1904년, 백씨 여인이 한글로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다
■<한글 26대 사건> 1907년, 주시경이 상동청년학원 안에 한글강습소를 열다
■<한글 27대 사건> 1926년, 한글날 기념식 가갸날이 열리다
■<한글 28대 사건>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하다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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