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주>

[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달개비꽃 엄마』 작가 한승원의 말= 열네댓 살의 중학생 소년은 장흥읍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니는 한 주일 동안 내내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토요일이면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책가방을 들고 산을 넘고 신작로를 달리고, 들과 바다를 건너 팔십 리나 떨어진 섬마을의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별 총총한 한밤중에 집에 들어서면서 “어메!” 하고 부르면 어머니가 맨발로 달려 나와 소년을 얼싸안으면서 “워따, 어메, 내 새끼야, 거기서 여그가 어디라고 또 걸어서 왔냐!” 하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소년이 지금의 나이다. 소년인 나를 팔십 리 밖에서 끌어당긴 강한 자성 같은 어머니는 대관절 어떤 존재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치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헤엄치다가 밖으로 나와 어머니의 하얀 피(젖)를 먹고 자라나지 않은 자가 있으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어머니에게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나는 이때껏 어머니에게 빚을 갚기 위해 살아왔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빚 갚기의 일환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어메’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그 말을 입에 담기만 하면 가슴과 목이 메고 눈물이 나온다. 어머니란 무엇일까.
‘곡신(谷神)’은 현빈(玄牝, 그윽한 암컷)이고 현빈의 문(자궁)은 천지근(天地根, 우주적인 뿌리)이라고 노자는 말했는데, 나는 곡신을 ‘어머니’라고 푼다. 감히 말한다면, 이 소설은 어머니의 의미와 가치와 성스러움을 나 나름으로 더듬어보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있게 한 우주적인 뿌리이자, 나를 구원하고 위안하고 아픔을 치유해주는 여신이다. (하략)

# 작가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향인 전남 장흥의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오고 있다. 작가 한강의 아버지다.
■ 달개비꽃 엄마
한승원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28쪽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