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편집의 민주화 시대, 과감히 편집하십시오
[서평] 편집의 민주화 시대, 과감히 편집하십시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10.13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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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쓰게 마사노부 『편집의 즐거움』

[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편집(編輯)은 다양한 것을 엮고(編) 모으는(輯) 행위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획을 하고, 사람을 모아, 물건을 만드는 작업’이다. 동굴 벽화에 그려진 상형문자나 도안, 유럽 대교회의 천장마다 빼곡히 들어찬 프레스코화, 대량으로 펴내는 책과 잡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모두가 편집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날마다 편집하며 살고 있다. 날마다 블로그를 쓰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문자나 동영상을 편집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 편집 행위가 일상사가 되고, 수많은 사람이 편집물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를테면 편집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옛날에는 편집물이 재력가나 권력자의 점유물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모두가 자신들만의 미디어를 힘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편집’을 하며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순하게 인터넷을 하고, 소셜 미디어를 운영할 뿐 ‘나는 지금 편집 중이야’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편집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 이 입문서가 유용하다. 저자가 이 책을 펴낸 목적은 편집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일상에 넘쳐흐르면서도 관심 영역 밖에만 머물러 있던 편집 세계와 그 수법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니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정독을 권장할 만하다.

히에로 신성문자의 탄생을 알린 이집트 벽화.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벽화부터 편집은 시작됐다. <사진제공 = 아이콘북스>

먼저, 책은 ‘인류의 역사’이자 ‘편집의 역사’를 살펴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편집물인 수메르 점토판(기원전 2900년)을 시작으로 사용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정보를 정리하고 레이아웃을 잡아 마치 개인 신문이나 잡지처럼 보이게 하는 소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페이퍼.일(Paper.Il)까지 편집사를 최대한 세세하게 다루되 무겁지 않게 그 ‘촉감’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편집의 역사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콘텐츠가 성서라는 점이다. 유대교의 성전인 구약성서와 크리스트교의 성전인 신약성서를 포함하는 성서는 지구상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많이 읽히는 인쇄물이다. 부수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영국의 신문인 ‘타임스’에 따르면 해마다 1억권이나 발행되니 최고의 편집물로 봐도 무방하다.

다시 편집의 이론으로 돌아가면, 흔히들 편집의 기본 3요소는 ‘언어, 이미지, 디자인’이라 말한다. 언어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이미지는 딱 한 번만 본 사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리고 디자인은 구체적으로 견해를 제시해 주어진 소재에 대한 일정한 시점을 정립하는 행위다. 글과 이미지를 사용한 다음 디자인까지 조화롭게 마무리하면 편집은 완성이다.

인쇄기술이 발명되면서 편집물은 대량으로 생산돼 대중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해 웹, 광고, 전람회 등 다양한 영역을 편집하고 뉴욕 ADC상 은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진 저자는 ‘편집의 기술’을 여러 개 전수한다. 독자를 사로잡는 ‘말(언어)’을 다루는 기술로는 4가지를 드는데, △프로의 문장은 지루함이 없다-편집은 보도와 달라 올바르고 객관적인 문장보다는 재미있고 주관적인 글이 빛을 발한다 △그들만의 언어에서 우리의 언어로-광고 카피로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규칙을 뛰어넘다-다른 카피와는 견줄 수 없는 독보성, 카피에 대한 카피를 만들어라 △문장은 꾸밀수록 지저분해진다-불필요한 잡동사니들은 적극적으로 제외해야 정보 전달 속도가 높아진다 등이다.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 ‘디자인’에 관해서도 기술별로 실제 광고 카피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일본 잡지인 경우가 많아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다만, 큰 주제들을 한국 사례에 접목해 가며 그 필요성을 깨닫기에는 충분하다.

‘새롭고 매력적인 표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고 남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을 모르고 만들었다면 사람들이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화는 매우 역사적이고 주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편집을 하려면 사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원칙을 세워나가야 한다. 더불어 편집은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사람들의 힘을 결집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기에 과거를 알고 남을 안 뒤,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말을 더듬었다. 아직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다. 대신 편집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11명의 명물 편집자를 취재한 『도쿄의 편집』, 편집 작품집 『편집 천국』에 이은 편집 3부작의 마지막 『편집의 즐거움』을 펴내 홀가분하다는 그. 막막한 편집 세계에서 첫발을 내디딜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고 바란다.

현재 우리는 각종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편집한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며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맺음말을 인용한다. “친애하는 벗이여, 내가 소설 형식에 관해 지금까지 썼던 내용은 남김없이 다 잊어버리고, 우선 과감히 소설 쓰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이 문장에서 소설이라는 단어를 편집으로 바꿔 읽으면 그가 하고 싶은 말이다.

“친애하는 편집인들이여, 내가 편집에 관해 지금까지 썼던 내용은 남김없이 다 잊어버리고, 우선 과감히 편집하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이 입문서와 함께.”

■ 편집의 즐거움
스가쓰게 마사노부 지음 | 신현호 옮김 | 아이콘북스 펴냄 | 284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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