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 그 눈부심을 위하여
순백, 그 눈부심을 위하여
  • 김혜식
  • 승인 2007.11.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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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의 『축 읽는 아이』를 읽고
▲ 김혜식(수필가)     ©독서신문
절기상 입동이 지났다. 하지만 아파트 화단의 개가죽 나무 나뭇잎은 아직도 핏빛을 잃지 않았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회색빛 아파트촌에 출렁일 때마다 단풍잎들은 더욱 제 빛을 뽐내었다.
신갈나무도 누렇게 잎을 물들이다 일제히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신갈나무의 낙엽은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한 듯 아파트 마당가에 떨어져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다.
낙엽을 분해시킬 땅을 잃었기에 토양으로 되돌려줄 탄소작용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마당가에 심어진 신갈나무를 바라보며 효용가치를 발휘 못하는 듯 해 왠지 안타까웠다. 그 나무가 산이 아닌 아파트촌으로 옮겨져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뿐만 아니라 인간도 처한 환경이 매우중요 함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신이 처한 환경의 제도나 정서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 때문인지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어린 시절은 어른과 달리 순백의 마음인 동심에서 모든 게 출발한다. 더구나 인격 형성의 시기인 사춘기 때의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사춘기 때 늘 마음의 신열로 들떠있었다. 그때 이미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던 터수라 중학교 2학년 때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고 인간의 삶에 대해 감히 고뇌 했었다. 독서를 통한 깨달음 탓인지 집안의 아버지의 부재, 그로인한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나의 순정에 충실 하려 애썼다. 현실에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마음으로 살고자 하였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경위를 보아 참으로 조숙했었던 같다.
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마음은 점점 퇴색돼 세상사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기에 이르렀다. 소녀 때 지향했던  순수가 내 마음 자락에 끼쳐드는 순간은 오로지 자연을 바라볼 때그 순간뿐인 듯하다.

위선과 가식이 난무하는 세상사에 살아남기 위해선 어린 날에 품었던 순정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야 했다. 한편으론 이렇듯 세상일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는 내 자신이 어느 땐 두렵기조차 하다. 날로 각박해지는 현대에 살며 이런 생각은 정녕 나뿐 만은 아닌가보다.
정의는 사라지고 불신과 반목이 판을 치는 세상에 오로지 꼿꼿한 선비 기질로 험한 세파에 물들지 않으려고 자신을 지키는 몸짓, 이방주 씨의 수필 『축 읽는 아이』가 그것을 전해 주고 있다. 
저자인 이방주 씨는 수필가로 인터넷 수필집 ‘느림보의 세상사는 이야기’가 있고 인터넷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어’엔 수필 단원을 집필하며 현재 괴산 연풍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축 읽는 아이』에 수록된 ‘물들이기’ 수필에서 내장산 산행을 하며 느낀 내적 심상을 주옥같은 한편의 수필로 진솔하게 표출했다.
내장산을 산행하며 고운 단풍 색에 매료돼 넋을 잃다가 저자는 갑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자신은 여태껏 어떤 색깔로 물들어 왔는가? 저자는 자신을 깊이 응시하면서 그것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본연의 색깔이길 원하고 있었다. 허나 그에 만족 않고 자신은 현란한 색깔의 단풍이기보다는 짙푸른 녹색의 나뭇잎이고자 하였다. 삶에 찌든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잃어진 지난 세월의 순수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 이면엔 그가 언제까지나 청춘의 심신으로 남고자 하는 심정이 역력함을 이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누구나 지닐법한 소박한 바람이련만 이마저 어찌 보면 탐욕이 아니냐고 저자는 겸손해한다.

이제 그토록 화려한 빛깔로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던 단풍잎도 낙엽이 돼 뒹굴고 있다. 어느덧 가을도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을 보내며 수필가 이방주 씨가 고뇌한 것처럼 나또한 가을빛으로 물들기보다는 지난날의 순백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순백의 색깔은 고요하여 침묵하는 듯하다. 하지만 희망의 색이 아니던가. 그 어느 색깔로도 물들일 수 있는 여백의 가능성이 잠재해 그 품은 늘 넉넉하다. 현란하게 눈을 미혹시키지 않는 순백색, 그 고결함과 청결을 내 가슴에 품고 싶다.
이제라도 내 마음 자락에 얹힌 세진들을 훌훌 털어내어 순백의 그 눈부심으로 나를 물들인다면 나도 다시 만년 소녀로 변신하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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