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묻힌다
[황태영 칼럼]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묻힌다
  • 독서신문
  • 승인 2016.09.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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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풀향기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반케이 선사가 있는 절에서 동안거가 열리고 있을 때 억울하게 도둑누명을 쓴 한 선승이 반케이 선사에게 누명을 벗겨 달라고 했다. 반케이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진정 그의 돈을 훔치지 않았는가?” “예. 엄숙한 수행처에서 어찌 남의 돈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으냐?”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전국에서 수많이 스님들이 모여 있어 제게 씌워진 혐의가 전국으로 번져 갈 것입니다. 매우 억울합니다.” 질색을 하는 스님에게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하려면 죄인이 나와야 하는데 그래도 좋은가?” 선사의 이 말을 듣고 그 승려는 문득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큰절을 하며 말했다. “여기 와서 제가 배우고자 하는 것이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 즉 대자비심을 얻는 일이었는데 그것을 그 동안 허망한 데서 찾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만을 생각한 점 진실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 스님은 홀가분한 얼굴로 선사의 방을 나갔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묻힌다. 향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찍는 도끼는 원수이다. 그러나 향나무는 자신의 아픔을 뒤로하고 원수인 도끼에 오히려 아름다운 향을 묻힌다. 피아의 구별이나 원망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관용과 화해만 있을 뿐이다. 진짜 향나무와 가짜 향나무의 차이는 도끼에 찍히는 순간 나타난다. 진짜 향나무는 찍힐수록 향기를 내뿜지만 가짜는 찍힐수록 도끼날만 상하게 한다.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찍히면서 비로소 진위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향나무는 가만히 있으면 향이 나지 않는다. 쓰라린 상처를 받아야 향기가 난다. 껍질이 벗겨지고 도끼에 찍히고 톱에 베일 때 비로소 향기를 품어내기 시작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다 좋아 보이지만 역경에 처하거나 배신을 당하게 되면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게 된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않고 원수에게 향기를 묻힐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요즈음은 귀 닫으면 눈에 보이고 눈감으면 시끄럽게 들리는 것이 정치다.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고 친구, 동료를 원수로 만들어 놓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이(利)만 추구하고 의(義)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느 때보다 시끄럽지만 국민들은 생활고로 신음을 한다. 이제는 분열과 갈등의 정치놀음에 휩쓸리지 말아야 하고 또 극악한 다툼은 끝내야 한다.
말 바꾸기와 불법을 일삼으며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극한 대립까지 부추기는 지도자들에게 베트남 건국과 통일의 아버지 호찌민의 유언을 들려주고 싶다. “전후 남베트남의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 군인도 경찰도 강요된 싸움을 했고, 살기 위해서 그리했다. 모두 한 민족으로 통일 베트남을 위해 새 출발을 하라.”

금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더운 여름날이면 늘 신영복 선생의 지혜가 그립다. “여름철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이 자라게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의 무더위도 반드시 그 끝이 있다. 사람을 밀쳐내고 증오하던 그 지긋지긋한 여름이 지나면 머지않아 서로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눌 겨울이 오게 될 것이다. 김남주 시인은 초겨울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남겨둔 홍시 하나를 조선의 마음으로 노래했다. 까치밥은 여유 있어 남겨둔 배부른 동정이 아니라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굶주림 속에서의 뜨거운 연대이다. 오해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향기로 화답하는 따뜻한 배려이다.
까치밥이 없는 빈 겨울 하늘은 상상조차 끔찍하다. 연대와 배려가 없는 세상만큼 삭막하고 허전하다.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빈가지 끝에 달려있는 빨간 감 한 개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바로 빛나는 우리들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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