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시인 권용태의 시모음집 <바람에게>
바람의 시인 권용태의 시모음집 <바람에게>
  • 안재동
  • 승인 2007.11.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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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신문
지새는 바람, 헐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못이겨 또 다듬어지는 가슴 한복판에다 못 하나를 박아 놓고, 왼통 가로(街路)를 광인(狂人)처럼 달려보는 것은 아무래도 신바람에 못이긴 바람, 그 바람과 언제고 영영 버려둘 수 없는 무수한 초인(招人)을 위하여 멋드러진 동상(銅像)을 조각하기 위함인가.
― 권용태, <바람에게> 부분
 
전국문화원연합회장인 권용태 시인의 시선집 『바람에게』가 월간문학 출판부에서 나왔다.  이 시선집에는 <바람에게>, <과욕의 덫>,  <귀천(歸天)의 네 사람>, <빈자(貧者)의 하늘>, <5월의 황제여> 등 66편의 시편들이 담겨 있다.
 
권 시인은 책 머리에 위치한 '시인의 말'에서, "1958년 「자유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지 올해로 꼭 50년이 된다. 결코 자랑할 일이 못 된다. 시를 왜 쓰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그 해답을 찾지 못해 생각하는 중이다. 시가 내 인생의 구원이었다거나 충만한 자유였고, 종교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내 생활이나 시대가 암울할수록 시는 유일한 도피처요, 위안이었음은 분명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평생을 '바람'을 소재로 깊게 투시하고 몰두해 왔다. 바람이 갖는 시원과 종말·감촉·상징·색감·형상·질감과 은유에 이르기까지 깊은 교감을 통해 절대적 가치를 추구해 왔던 것 같다. 바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면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불 것인가를 놓고 깊이 고민한 적이 있다. 이런 허황된 꿈을 지금도 꾸고 있다."고 말한다.
 
권용태 시인은 일찌기 사회시 또는 참여시류의 시인으로도 명성을 떨친 바 있다. 1960년대를 전후 한 시점에서 그러하였는데, 그 중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병실 같은 / 그늘진 조국의 하늘 아래서 / 나는, / 서러운 식민지의 밤을 걸을 때처럼 / 어두운 가슴으로 살아간다. // (중략) // 바람의 시위 속에 싸여 / 굴욕을 숙명처럼 마시고 살아가는 / 부조리의 권태 속을 / 우리는 태연하게 헤쳐간다. // 언제고 꼭 한 번은 / 파도처럼 일어 올 분화구의 / 최후를 기억하며 / 우리는 외로운 언어들을 지니고 살아간다.
― 권용태, <구름은 아직도> 부분
 
▲ 권용태 시인     © 독서신문
위 시는 1961년 5월 18일자에 《민족일보》에 게재토록 되었지만, 바로 그 이틀 전의 쿠데타 검열로 활자화되지 못한 채 신문에 빈 여백으로 나간 역사적인 작품이다. 물론 이로 인해 권 시인은 군 수사당국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기도 했다. 이 시에 대해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당시 다음과 같은 해설을 남겼다.
"1961년 당시 한국 시단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파격적이다. 피식민지 의식의 아픔에서 민족 의식에 대한 향수가 정교하게 장착된 이미지를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일깨워지도록 만든다. (중략) 잠시 문학은 휴면 상태에라도 들어간 듯했던 이 시기에 권 시인이 남긴 이 작품은 마치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장식했던 민족 시인을 연상케 한대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5·16 전후의 문학적 공간에서 이 시는 재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런가 하면, 이 시집의 4번째에 위치한 <남풍에게>란 시에 대한 평가도 주목거리다. 1965년 6월 6일자의 한국일보 <이달의 문제작> 선정평에 따르면, "지난달의 작단(作壇)이 부진하고 오히려 시단에서 어느 정도의 수작(秀作)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서정시를 시도하고 있는 <남풍에게>(신동아,6월호)를 꼽을 수 있다. <남풍에게>의 작자는 그 동안 현실 고발의 시를 쓰는 데 주력해 왔었다. 현실 고발에 있어서도 갖추어야 할 예술성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현실 고발의 시경향을 가지고 있던 이 작자가 <남풍에게>에서 보이고 있는 서정시로서의 격식은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문덕수(시인), 김우정,이광훈,장백일(문학평론가), 이형기(시인) 씨 합평  
  
남풍은 / 누구의 계시도 없이 / 살아날 파도 속에 묻혀 / 하늘빛 치마폭에 싸인 채 / 떠나간 구름의 그림자가 아닌가. // 남풍은 / 밤의 창들 속에 갇혀 / 달아날 하구를 잃고 / 서성대는 / 사랑 같은 그런 속삭임이 아닌가. // 남풍은 다시는 되살아 올 수 없는 / 마네킹의 / 그림자와도 같은 기억 속에서 / 모든 연인들의 가슴을 / 적시고 간 / 그런 눈물이 아닌가. // 남풍은 / 전쟁이 스쳐간 / 성벽 속에 파랗게 돋아난 / 생명의 잎새를 따라 / 울고 섰는 / 감미로운 그런 음악이 아닌가.
―권용태, <남풍에게> 전문
 
이상에서 권용태 시인과 관련한 인상 깊은 몇 대목을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집에는 개성이 강한 시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 맥락으로 보건대, 이 시집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전편에 걸쳐 소리없으나 예사롭지 않은 바람의 감각을 쉬 느낄 수 있으리라.
▲ 안재동 시인·평론가     ©독서신문

 
권용태 시인은 경남 김해 출생(1937년)으로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58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중대신문》편집국장과 kbs 방송위원,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강남문인협회 회장 등을 지낸 바도 있으며 서라벌예대, 중앙대, 서울여대, 경주대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아침의 반가』,『남풍에게』,『북풍에게』등의 시집이 있고 중앙문학상과 노산문학상,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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