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헬조선’에 던지는 희망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메시지-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서평] ‘헬조선’에 던지는 희망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메시지-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8.29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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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프로이트의 패러다임을 전복하고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이 책 보도자료의 첫 머리다. 무슨 말인가. 오이디푸스를 알아야 하고 나아가 텔레마코스는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그리고 콤플렉스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헤아려야 이 말을 알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책을 들었다, 후회막급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의 상징적 권위가 무게와 힘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추락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저자는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개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전례 없는 해석을 시도, 젊은 세대가 느끼는 새로운 형태의 불만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하나의 도구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권위 상실, 나아가 아버지들은 영원히 증발했거나 아이들과 함께 비디오게임에 열중하는 친구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제는 아버지 위력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아니라, 아버지가 해체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아버지의 남은 부분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느냐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테베에서 아테네 근교의 ‘자비로운 여신들’의 성역으로 피신한 오이디푸스,
더 늦기 전에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를 설명해야겠다.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가 들려주는 신화 속에서 버림받은 아들이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분도 모르는 채 청년으로 자라나 어느 날 막다른 골목에서 아버지 라이오스왕과 부닥친다. 길을 비키라고 명령하는 왕(아버지)과 결투를 벌여 무찌른다. 그리고는 왕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왕비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고 자식을 낳는다. 나중 이 사실을 안 오이디푸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파내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고안한 말로 근친상간의 욕망이 인간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하며 범죄적 형태로 드러나는 부친살해 등은 콤플렉스로 이어지며 죄의식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저자는 결국 ‘오이디푸스는 아들로서 존재할 줄 모른다.’ 고 말한다.

텔레마코스는 누구인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아들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며 아들을 남겨두고 떠난다. 이십년이 지난다. 바다와 파도가 고향섬으로 돌아가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린다. 아들 텔레마코스의 욕망은 단순하다. 아버지의 귀환이다.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박진감이 느껴진다. 다음 페이지가 기다려질 정도다. 마치 텔레마코스가 바다를 보며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학수고대하듯.

 
저자의 초점은 텔레마코스임을 잊어선 안된다. 한 대목을 인용한다. ‘누군가의 자식인 우리는 모두 텔레마코스였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바다에서 돌아와야 하는 아버지를 기다려본 적이 있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텔레마코스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다. (중략) 텔레마코스는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을 향해 열려 있는 그의 시선은 자신의 사악한 욕망과 죄의식에 눈먼 시선도, 욕망의 치명적 아름다움에 현혹된 시선도 아니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이다) 텔레마코스는 오이디푸스처럼 아버지의 존재를 하나의 장애물로 경험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방해하는 규율로 경험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운다.’ 저자의 논지가 매우 명쾌해지는 순간이다. 아니, 기자 눈이 밝아진 순간이다.

다시금 인용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오이디푸스보다 텔레마코스를 훨씬 더 많이 닮았다. 젊은 세대는 아버지답게 행동하기를, 누군가가 바다로부터 돌아오기를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다줄 새로운 계율이 도래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78쪽의 대목이 없었으면 아마 중간에 책을 놓았을 것이다. 저자가 단순히 학문적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 대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을 잃지 않았구나 하는 다행스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내용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직장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텔레마코스의 시선 또한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 ‘일’을 기다리는 시선이 아닌가?’
직장 구하기의 간절함, 저자는 이것이 바로 증거라고 말한다.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살자 수가 증가한다. 직장을 잃는 것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스스로의 삶을 동물의 삶과 다르게 인간화할 가능성을 빼앗기는 것이 곧 지옥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총체적 경제위기를 맞이한 이 시대가 인간을 다루는 담론의 중심주제로 ‘노동’을 선택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오디세우스와 아내 페넬로페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경제위기가 무대 위에 올리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바로 텔레마코스다. 텔레마코스는 오늘날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인물이다. 과거 오이디푸스는 세대간의 분쟁과 투쟁을 상징했고, 텔레마코스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표명하고 있는 불만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 열쇠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들로 존재할 줄 아는 아들이다.

옮긴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책 뒤에 남겼다. 텔레마코스는 버려진 아들이지만 믿음을 잃지 않았으며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잃지 않는 아들이라고. 망망대해를 향하는 희망의 시선,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텔레마코스의 기다림을 기대한다.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마시모 레칼카티 지음 | 윤병언 옮김 | 책세상 펴냄 | 25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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