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지회라니 혈맹의 동지처럼 의지가 굳센 단체 같다. 노인들의 모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교장실은 돌연 왁자지껄하다. 오늘이 바로 학생들에게 경로효친 강의를 하는 날이다. 회원들이 중학교를 돌아가며 학생들에게 경로효친을 한시간씩 강의하는 날이라 서로 교안을 보며 지난 강의 얘기하며 애들처럼 웃고 떠든다. 노년의 행복을 본다.
회원 교장을 따라 교실에 갔다. 전직 교장선생님인 이 노인은 노트북을 열어 TV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우더니 목소리를 높인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옛 학생주임 시절 ‘기백’을 엿보게 하고 지시봉을 든 손에서는 평교사 시절 ‘열정’을 느끼게 한다.
중학생들은 어떤가. 학생들 대부분 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꼰대’들의 ‘경로효친’ 강의라니, 말 그대로 재미는 꽝일 것이라는 짐작이지만 그래도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고 따라 읽는 모습은 기특하기까지 했다.
교단에 선 노인은 동서를 가르고 고금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로효친의 사례를 우스개와 섞어 열강을 하고 책상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졸린 눈이 살아나며 집중하는 모습이다. 학생들은 이런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경로효친에 대해 가정이든 학교든 일언반구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네이버에서 키워드로 검색해 본 적도 없다.
경로효친이 이미 체화된 노인들과는 메울 수 없는 시공간이 이렇게 깊다.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을 이 노인들이 하고 있다. 이들은 시대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더듬더듬 인터넷을 하고 안 보이는 눈 비벼가며 카톡을 하면서 교안을 만든다. 학생들 앞에 서면 노후의 ‘심지’가 새로 돋아나 힘이 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은퇴 후 버킷 리스트(LIST)를 만들라 한다. L은 Leisure(여가), I는 Insurance(보험), S는 Safe asset(안전 자산), T는 Travel(여행)이라며 준비할 것을 권한다. 이 노인 교장선생님들은 경로효친 강의를 통해 ‘여가’를 활용하고, ‘여행’삼아 이 학교 저 학교 오가며 건강을 챙기니 그 또한 노후‘보험’ 아닌가. ‘안전 자산’은 그동안 키운 제자들일 것이다.
이 나라는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이들 노인들에 감사해야 한다. ‘코리아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1순위는 ‘노인’이다. 그리고 이 노인들이 죽기 전 ‘경로효친 버킷 리스트’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