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 -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작금의 우리 시단을 둘러보면 정지용만 한 균형과 절제를 갖춘 시인도 없고 김수영처럼 주어진 틀을 과감히 돌파하는 참다운 전위의 시인도 없다. 무엇인가를 이룰 만하다고 판단되었던 시인들은 절제를 잃고 자기 시의 복제품의 대량생산에 만족하는가 하면, 한때 경이의 세계를 발견했던 시인들은 겸허를 잃고 확신에 찬 어조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강압하려 든다.
의지할 만한 선배가 없는 신인들은 세기말의 당돌한 이이들답게 마약과 같은 로큰롤과 대책 없는 섹스와 허무, 광란에 가까운 부르짖음으로, 영원히 탕진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의 포즈로 시집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시 읽기의 즐거움』 117~118쪽│ 이시영 지음 │ 창비 펴냄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