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자] "노동자도 시 읽는 사회 됐으면…"- 이시영 시인
[이 저자] "노동자도 시 읽는 사회 됐으면…"- 이시영 시인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7.28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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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시는 어렵다? 맞다, 어렵다! 여러 시인들도 시의 어려움을 시인한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지금의 언어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게 설명이라면 설명이다. 기자는 『시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보며 시를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시는 그렇게 재미로 읽는 게 아님을 저자 이시영 시인의 말에서 새삼 느꼈다. 어떤 벽을 본 게 아니라 새로운 거울을 본 느낌이다.

그리고 이 시인은 현대시를 훑으며 유명 시인, 유명 작품에 대한 평이 비교적 뚜렷하다. 청록파 시인에 대한 냉정함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품었던 조지훈에 대한 우러름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기에 족했다. 박목월에 대한 생각은 더욱 후해졌다. 새로운 거울을 보았음이 새로운 충만을 준다. 이시영 시인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학교는 어디를 다니셨는지, 그리고 주로 성장한 지역은 어디인지요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전주 영생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로 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이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성장한 지역은 지리산 밑 구례이며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전주겠지요. 열 살 때까지 본 풍경이 일생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제게 평생의 풍경으로 각인된 곳은 구례의 농촌 마을입니다."

- 『시 읽기의 즐거움』 책 잘 봤습니다. 눈을 비비며 봤습니다. 이런 책들이 좀 더 많이 읽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론 같은 질문입니다만, 요즘 문학은 위기입니까.

"문학이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엄정하게 말해서 서구문학의 유구한 역사도 위기의식의 산물입니다. 자기가 사는 당대를 과거의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아직 ‘새 것’은 오지 않는 시대로 파악하는 셈이지요. 문학의 위기 이전에 우리가 사는 지구 현실 자체가 늘 위기입니다.
사드를 둘러싼 최근 논의를 한번 보세요. 낡은 안보관과 주민 생존권 내지 평화 개념이 충돌한 것이지요. 정부 당국은 북핵이라는 국가위기를 내세워 새 무기체계를 들이고자 하고 주민들은 우리가 왜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그 희생의 번제가 되어야 하느냐고 하는 것이지요. 문학은 근본적으로 이 위기를 먹고 삽니다."

▲ 이시영 시인.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지금의 언어로 기록하려니 시는 어렵다. 문학이 위기가 아닌 때가 언제 있었냐며 이 시인은 문학은 위기를 먹고 산다고 했다.
- 시는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왜 어려워야 하나요. 우리 고유의 음보(책에서 봤습니다)로 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힘듭니까.

"제가 인용한 음보 개념이 중요한 것이긴 하나 이 음보로 새로 씌어지는 현대시를 설명하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3음보, 4음보는 민요에 적합하며 고려가요나 향가에 더 가깝습니다. 복잡한 현대를 사는 모든 시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겠지요.

시는 원래 ‘애매성’을 그 특질로 간직한 문학 장르여서 소설보다는 읽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어려워야만 좋은 시가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어려운 시, 진짜 난해시가 있는가 하면 김수영이 말한 ‘난해시처럼 꾸며 쓴 난해시’도 있지요. 비평가들이 그걸 가려주어야 하는데 우리 시비평이 그렇게 섬세하지 못합니다."

- 아름답고 쉬운 시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독자를 배려해야 합니까, 아니면 독자가 시인을 읽어야 할까요.

"그런데 아름답고 쉬운 시도 많다고 하셨는데 윤동주의 경우라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상의 경우를 여기에 대입하면 아름답고 쉬운 시는 아니지요. 어떤 시들은 카프카가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한 말처럼 “시계처럼 가끔 앞서가는 거울”이므로 ‘단순한 기록과 증언’을 벗어나 “아직 지배적 흐름으로 가시화되지 않은 것들, 도래할 세력들에 대한 기록이며 증언”(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지금의 언어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대중 정서에 호소하는 쉬운 시들은 이런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고뇌가 생략되어 있어서 일급 예술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 시인 이시영 시집과 영역 시집 Patterns(미국, Green Interger)
- 책에는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런 시를 써야 하지 않느냐 할 때 어떤 시인을 고르시겠습니까.

"시론으로서는 김수영, 시로서는 백석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예술가란 그가 진지한 경우라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기존 지식체계 밖으로 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독자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시사는 희귀한 몇몇 예들을 보여줍니다. 소월과 지용으로부터 백석 서정주 김수영 등등."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 대한 수작 타작 평가는 신선해 보입니다. 남의 작품 평가가 쉽지는 않은 일인데, 이런저런 험담도 듣고 불평 불만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고은의 『만인보』는 한국 시사에 빛나는 역작입니다. 최근 나는 광주항쟁을 다룬 27~30권을 읽고 그 방대한 스케일이며 섬세한 인물 묘사와 창조에 놀랐습니다. 이는 여태까지 한국 시가 이룩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새로운 개척입니다. 그러나 그러니만큼 작품 개개에 대한 섬세한 읽기가 더욱 필요한 것이지요. 껄끄럽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감행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양심이기도 합니다."

-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본 시들이 오래 기억에 남고 그 시들이 시에 대한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교과서에 시가 많이 실려야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말씀….

"아무래도 학교 교과서의 시들이 시에 대한 한 사람의 생각을 지배적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런만큼 교과서 편자들의 섬세한 시 선정이 필요합니다. 청소년기에 읽은 한편의 시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나는 지금도 육사의 「절정」의 마지막 두 구절을 외웁니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버클리대 초청 한국문학번역워크숍 참가 차 버클리대 정문에서. 왼쪽부터 김수복 이시영 김승희 시인과 안선재 번역가.
-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교시절 시의 ‘해석’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느끼는 게 아니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니겠죠

"문제풀이 해석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일정한 시 해석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시 교육의 일환이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리고 제대로 분석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기계주의적인 시비평이 학교에서의 바람직한 시 교육을 많이 죽여놓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날것 그대로를 먼저 느끼고 그것을 충분히 음미한 다음 분석에 들어가도 늦지 않습니다.

제 책에서도 누누이 경계하는 바가 과잉비평이나 과잉해석입니다. 대부분의 교과서 시들이 이 과잉해석에 의해 죽어버렸습니다. 살아있는 시를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 느낄 줄 아는 것이 시 읽기의 첫번째여야 합니다. 즉 작품에 즉하는 시 읽기! 이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 이시영 시인
- 요즘 시 낭송 등 시 읽기 행사가 제법 활발합니다. 이런 것들이 시의 대중화(?)에 도움을 준다고 보여집니다. 한 말씀….

"시 낭송 프로들이 시를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 더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대중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진지한 시 독자를 만들어가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 책 맨 뒤를 보니 참 어려운 시절 보내셨습니다. 문학하는 사람, 예술하는 사람은 어떻다, 또는 이래야 한다 라는 게 있나요.

"문학하는 사람, 예술하는 사람이 특별히 어떠해야 한다는 원칙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사회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고 자기 시대를 비판적으로 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에다 진선미에 대한 도덕적, 감각적 깊이를 가지면 더욱 좋고."

- 시 읽는 사회를 구현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시 읽는 사회보다 노동자가 시를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60년대에 신동엽이 ‘서울역 지게꾼의 현실을 대변하는 시를 써야 한다’는 요지의 말에 대해 김수영이 “시를 쓰는 지게꾼이 나오지 않는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의 결여”를 얘기하는 바와 같은 것입니다. 이는 위에서 스치듯 언급한 바 ‘시의 대중화’와도 긴요하게 맞물리는 얘기입니다. 시를 읽고 토론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시의 참된 대중화가 이룩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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