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김혜식의 인생무대] 갈짓자 행보
[수필- 김혜식의 인생무대] 갈짓자 행보
  • 독서신문
  • 승인 2016.07.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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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친정 노모께 자주 문안을 간다. 수개월 전만 해도 연중 절반 이상을 나의 집에서 같이 지내던 분이다. 떨어져 살고 있으니 자식으로서 안쓰러운 마음 그지없다. 요즘은 아들이 사준 새 집에서 당신 나름의 취미 생활을 하며 지내신다. 강아지를 곁에 두고 벗처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닭도 두 마리를 키운다.

친정엘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늘 타이른다.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해코지 하지 마라. 버스 안에서 남에게 발을 밟히면 오히려 네가 밟혀 죄송하다고 사과해라. 남을 존중하는 게 결국은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다.” 이런 내용을 교장선생님이 훈시를 하듯 말씀을 한다. 이는 어려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어머니 밥상머리 교육이다.

평소 어머니 말씀을 실행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때론 어머니 말씀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어느 경우엔 내 밥그릇도 제대로 못 찾는듯하여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세태엔 선하고 순수한 사람이 항상 남에게 당하기 일쑤 아니던가.

나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타인 일에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하였건만 결과는 상대방이 안겨준 상처가 전부일 때가 있다. 타인이 저지르는 오류를 곁에서 보다못해 충언하였다. 이를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그것을 빌미로 나를 공격해 오기도 했다. 이로보아 선하게 살고 남에게 덕을 쌓는 일만이 올바른 삶의 자세만은 아닌 듯하다.

황태영 수필가는 자신의 글에서 좋은 인맥을 만들려면 사기꾼 곁을 찾으라고 했다. 역설적인 주문이지만 뼈가 있는 말이라 여겨진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선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소리다.

얼마 전 버스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가씨가 버스에서 내리는데 한쪽 운동화 끈이 풀려서 자칫 밟으면 넘어질 듯이 보였다. “아가씨! 운동화 끈이 풀렸어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고맙습니다.” 라는 말 대신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이렇듯 쌀쌀맞게 대꾸를 한다. 얼굴이 화끈했다. 왠지 무안했다. 옆을 돌아다보았다. 누가 보지나 않았나 싶어 위축이 되었다. 괜스레 남의 일에 간섭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이 일을 당하자 몇 해 전 어느 신문기사가 문득 떠올랐다.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꽁초를 버린다고 20대 청년을 훈계한 60대 할머니가 그 청년에게 벽돌로 맞아 숨졌다는 내용이다.

그 청년이 할머니 말을 고맙게 받아들여 자신에 그릇된 행동을 반성하는 선한 마음을 가졌다면 서로가 좋았을 사안이다. 선이란 자신에 마음 자락을 올바르게 펼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선의 개념이 꼭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행동하라는 게 아니다. 타인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면, 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곧 선이란 생각이다.

옳지 않은 것을 바르게 잡으려는 마음은 불의를 배척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음험하고 사악한 바탕에서는 우러나올 수가 없다. 정갈한 마음만이 가능하다. 자기중심적인 할머니였다면 타인 일에 간섭을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할머니는 손자 같은 청년이 올바른 시민의식을 갖기를 희망했을 터, 하지만 돌아온 대가는 분노였다. 그 분노는 끝내 할머니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가는 흉기로 돌변하고 말았으니, 인간 성정이 어디까지 본심이란 말인가. 예로부터 이런 표리부동한 인간 성정을 경계해 왔었나보다.

초나라 소왕의 첩 조희가 시집가는 딸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선은 절대 행하지 마라. 오히려 남에 게 질시를 받게 된다.” 그러자 딸이 “그럼 악인으로 행동을 할까요?”라고 묻자 조희는 “선도 행하지 말라 했거늘 하물며 악을 행해서야 되겠느냐?” 라고 답했다.

중국 명나라 때 사조제(謝肇猘) ‘문해피사(文海披沙)’에 실린 내용이다. 현 세태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에겐 실로 도덕경이나 다름없는 조희의 말이다.

남을 믿었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착한 일을 행했다가 오히려 질시를 받고 모함을 받으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학교, 혹은 부모님들로부터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야한다고 교육 받았다. 어머니로부터는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이런 가르침들이 어찌보면 현대 무한경쟁 시대엔 적합하지 않는 배움일 지도 모른다.

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자들이 득세하고, 원칙과 기본을 지키며 선을 행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조희의 말처럼 선을 대함에 ‘갈짓[之]자’ 행보를 해야 하는가.

과연 소왕 비 조희의 지혜로움은 어느 쪽인가. 필부(匹婦)의 식견(識見)으론 분간이 어렵다. 죄스럽게도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지난날 학교 선생님의 올바른 가르침, 엄격한 어머니 훈육에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기에 새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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