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시 읽기의 즐거움』 이시영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된 시, 음악성이 살아있잖은가"
[작가의 말] 『시 읽기의 즐거움』 이시영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된 시, 음악성이 살아있잖은가"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7.08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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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은 소설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또는 책머리에)을 새로 싣는다. '작가의 말'은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을 원형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주>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시 읽기의 즐거움』 이시영 시인의 말(책머리에)= <전략> 좋은 시를 읽는 즐거운 중의 하나는, 뛰어난 시구는 계속되는 반복 감상에도 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봄날, 병아리가 어미 꽁무니를 쫓아가고 있다
나란히 되똥되똥 줄 맞춰 가고 있다

연둣빛 풀밭은 병아리들 발바닥을 들어올려 주느라 바쁘다
                                          - 안도현 「해찰」 부분

토끼는 어느 먼 골짜기에다
제 발자국을 찍으며 서럽게 뛰어갈 것이다

                                          - 안도현 「사냥」 부분

앞의 시에는 봄 마당의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놓칠세라 분주히 발을 옮기며 되똥되똥 따라가는 모습이, 그리고 연둣빛 풀밭이 그 작은 발바닥들에 연신 호응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고, 뒤의 시에는 양식이 떨어져 마을 가까운 산으로 내려왔다가 동네 사냥꾼들을 피해 '환약 같은 토끼똥'만을 남기고 깊은 산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눈밭에 '제 발자국을 찍으며 서럽게 뛰어'가는 토끼의 자태가 얼마나 생생한가! <중략>

나는 이 구절들을 수십번도 더 읽었으나 물리지 않았으며 읽을 때마다 언어의 맛이 새로웠다. 근대시 이후 시에서의 음악성이 거의 소진된 것 같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좋은 시는 이렇듯 독자들의 반복 감상에 살아남으며 작품으로서의 새로운 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신경림의 「목계장터」나 서정주의 「동천」을 읽어보라. 읽을 때마다 바람소리가 다르고 겨울의 하늘빛이 다르지 않은가. 즉 음악과 함께 의미가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다. 시의 고전이란 바로 이런 경지에 이른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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