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폴리 피자’ 명성은 토마토가 결정적 역할 했다- 『맛의 천재』
[서평] ‘나폴리 피자’ 명성은 토마토가 결정적 역할 했다- 『맛의 천재』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7.04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문화는 무릇 기록의 힘이고, 그 기록은 유산이 돼 후손들에게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기록의 힘이고 기록에 힘입어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피자, 스파게티, 모짜젤라 치즈, 에스프레소 등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 먹거리 등 맛의 세계를 17개 키워드로 정해 샅샅이 훑는 것은 대단한 지적 모험이며 오랜 천착을 요구하는 지난한 일이다. 우선 저자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편으론 우리 맛에 대한 몇 백 년 전 기록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며, 우리 맛을 17개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무엇을 꼽아야 할까, 그렇게 많이(?) 꼽을 거나 있을까 하는 소심한 걱정도 앞선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역사 저널리스트로 신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책을 냈다. 저자가 낸 『책공장 베네치아』『돈의 발명』 등이 이미 국내에 소개돼 있다.

‘세계 곳곳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음식’이라는 다소 무거운 말은 뒤로 하고 음식들의 탄생 비화와 성공 비결을 듣는 것만도 행복하다. 거기에 당시의 인물, 역사, 문학, 미술, 음악 등 여러 장르 콘텐츠가 두루 등장하며 맛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겸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때 요리사로 일했다는 것을 안다면 다빈치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 축에 든다. 그 다빈치가 피렌체 공방 견습생 시절, 식당 종업원으로 ‘알바’를 한다. 식당 이름이 ‘세 마리 달팽이’였다.
어느 날 요리사들이 원인 모를 독극물로 모두 죽으며 다빈치는 주방장으로 승격된다. 다빈치가 누구인가. 넘치는 창의력의 사나이, 드디어 일을 낸다. 음식의 양을 줄이고 접시에 담는 모양새에 신경 썼다. (저자는 이를 누벨 퀴진이라 평했다.)

▲ 나폴리 앞바다의 카프리 섬에서 유래한 카프레제 샐러드. 모짜렐라 치즈, 토마토, 바질잎, 그리고 발사믹 식초로 만든다.
그러나 손님에게 항의를 받고 쫓겨난다. 다빈치는 한 친구와 새로운 식당을 열었다. 그 친구가 르네상스 시대 다빈치 못지않은 명성을 얻은 보티첼리다.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 보티첼리 요리 솜씨는 알려진 게 없다. 요리 재료로는 비너스의 발밑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개를 그렸다는 정도다. 하지만 식당은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어쨌든 다빈치는 요리사 명성은 이어가고 요리용 기계를 설계하기도 한다.

저자는 피자부터 소개한다. 997년에 한 서류에 피자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500년이 훌쩍 넘어 1570년경 교황 피오 5세의 요리사 바르톨로메오 스카피가 자신의 요리책에서 처음 피자를 언급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피자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 피타가 거의 확실하다. 피자 기원도 그리스일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으로 피자가 변한 것은 나폴리에서였다.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토마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토마토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17세기말과 18세기 초 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피자, 즉 모든 피자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전통적인 나폴리 피자’가 등장했다고 불 수 있다. 이 피자를 오늘날 우리는 ‘마리나라’라고 부른다.

▲ 이탈리아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짜렐라 치즈. 박찬일 셰프는 이 책 추천사에서 “이 치즈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은 봉지를 뜯은 후 대충 썰어서 질 좋은 올리브유와 약간의 소금을 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물어 뜯는다. 속에 들어 있는 우유가 줄줄 흐르는데, 이게 섹시하다”고 말했다.
나폴리 사람들은 ‘피자 한판 먹자’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는다. 대신 ‘피자 한판 하자’라고 말한다. 우리도 “소주 3병 먹고 코가 비뚤어져 볼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볍게 그냥 “소주 한잔 하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피자는 나폴리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문헌에 따르면 피자는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으로 무엇보다 거리의 음식이었고 선 채로 접어서 먹는 게 보통이었다. 부랑자들의 음식으로도 불렸고 뜨거운 상태에서 네 겹으로 접어 먹는 음식 등으로 기록돼 있다.

160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요리의 언어를 지배했던 게 프랑스어였다면, 전쟁 이후 피자는 이 운명을 뒤집어 놓았다. 피자의 보급은 세계 메뉴의 절반을 이탈리아식으로 뒤바꿔 놓았다. 그러나 이제 피자는 국적이 없는 음식이다. 몇 년전부터는 이탈리아에 사는 이집트인들이 최고의 피자이올로(피자 장인)를 뽑는 경연대회에서 이탈리아인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자를 아예 미국 것이라고 아는 사람도 많다.

이는 미국으로 건너간 나폴리 사람들이 만든 피자헛 덕분이기도 하다. 1958년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탄생한 피자헛은 지금은 텍사스 댈러스에 본부를 두고 있고 100개국 이상의 나라에 11000개의 레스토랑을 갖고 있고 종업원은 14만 명이 넘는다. 피자헛은 아직 이탈리아에는 “그건 피자가 아니야”라는 이유로 상륙하지 못했다.

▲ 스프리츠. 애초에 주막에서 마시던 서민적 술로 요즘은 한여름 아주 차갑게 해 마신다.
스파게티로 넘어가 보자. 저자는 미국에서의 스파게티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군인이라고 말한다. 미국 육군과 해군 모두 뒤늦게 스파게티를 받아들였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지자 이들이 주문하는 스파게티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또 하나 육체파 여배우 소피아 로렌의 공도 크다. 넘쳐 쏟아질 것 같은 가슴을 잘록한 허리로 받치고 관능적인 시선으로 스파게티를 바라보며 입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노라면 스파게티가 언제 목을 타고 넘어가는지 모른다.

■ 맛의 천재 - 이탈리아, 맛의 역사를 쓰다
알레산드르 마르초 마뇨 지음 │ 윤병언 옮김 │ 책세상 펴냄 │ 576쪽 │ 23,000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