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고니를 새기다가 실패해도 오리는 닮는다
[황태영 칼럼] 고니를 새기다가 실패해도 오리는 닮는다
  • 독서신문
  • 승인 2016.06.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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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의 풀향기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투자신탁에 같이 근무했던 직장 선배들이 십수년만에 정말 반갑게 인사동 가게를 찾아주었다. “가게를 언제부터 했느냐?” “왜 진즉 연락하지 않았냐?” 등 안부를 묻다가 예전 직장동료들이 자주 오느냐고 물었다. “자주 보기는 어렵습니다. 꼭 왔었어야 할 분들도 3년을 넘게 한 번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만큼 살림이 팍팍해졌고 다들 삶이 어려워졌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투자신탁은 최고의 월급과 복지를 자랑했다. 동료간 정도 있었고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다수는 많이들 힘들어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고달파한다. 직장인은 버는 것 보다 써야 할 곳이 많고 그나마도 언제 퇴사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초조해한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허우적거리며 늪에 빠질 뿐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수심만 가득하다. 경제는 침체와 구조조정의 암울한 소식뿐이다. 회식은 줄고 자영업자들도 한숨만 쌓인다.

요즘 서민들의 세상살이는 수무푼전(手無分錢, 가진 것이 한 푼도 없다)과 망자재배(芒刺在背, 가시를 늘 등에 진 것처럼 편하지 않다)로 축약될 듯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경제가 팍팍해 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이 팍팍해 진 것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 할 정도로 어릴 적 보다는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의식주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고 삶은 윤택하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지치고 고단해한다. 공존의 배려 없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모두가 힘들고 불행해 진다.

옛날에 임금님이 시골로 행차를 하신다고 했다. 임금님의 용안을 몹시도 보고 싶어 하던 노인이 아들에게 말했다. “살아생전 임금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아들은 어머니를 업고 백리 길을 걸어 임금님이 행차하시는 곳까지 갔다. 사람들이 많아 임금님을 보기가 어려워지자 아들이 엎드렸다. 어머니가 아들의 등을 밟고 올라가 임금님을 보고 있었다. 임금님이 지나가다가 이 모자의 기이한 모습을 보고 물었다. “무슨 연유가 있느냐?” 아들이 자초지종을 아뢰었다. 임금님이 답했다. "참으로 효자로다." 임금님은 그 자리에서 효자 아들에게 상을 후하게 주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이웃마을 불효자가 어머니를 강제로 업었다. 그리고 효자 아들처럼 엎드려 어머니가 등을 밟고 올라가 임금님을 볼 수 있게 했다. 임금님이 그 모습을 보고 또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불효자가 효자의 말을 그대로 흉내 내어 답했다. "어머니가 임금님을 뵙고 싶다 하셔서 제가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아 잘 볼 수가 없으셔서 제가 엎드렸습니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기가 막혀 임금님께 고했다. "아닙니다. 임금님. 저놈은 상을 타기위해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놈은 불효자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명하였다. "흉내라도 좋다. 효도는 흉내를 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적극 장려해야 한다. 저 불효자에게도 상을 후하게 주도록 해라.”

각곡유목(刻鵠類鶩)이란 말이 있다. 고니를 새기려다 실패해도 집오리와 비슷하게는 된다는 뜻이다. 큰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그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비슷한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 광무제 때 장군 마원은 남을 비판하고 경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조카를 편지로 꾸짖었다. "남의 단점을 듣더라도 귀로만 듣고 입으로 발설하지 마라. 진중하고 검약, 청렴한 용백고 같은 이를 본받아라. 그러면 고니를 새기다가 실패해도 오리는 닮듯이(刻鵠不成尙類鶩) 용백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삼가고 조심하는 관리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치고 힘들지만 한번쯤은 예전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이웃이 함께 잘되기를 기원해주던 세시풍속, 나그네가 오면 재워주고 먹여주던 그 마음들을 흉내라도 내보았으면 싶다. 콩 한쪽도 나누던 그 시절, 그 마음을 흉내라도 내다보면 다시 그 정도의 정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삭막한 세상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줄 수는 없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날아서 뛰어서 굴러서 기어서 살아 왔고 또 살아가게 되겠지만 도착점에서 도달해보면 다 부질없고 다름이 없다.

삶은 스치는 바람이요 한줌 흙일뿐이다. 부도 걱정하는 재벌회장보다는 콧노래 흥얼거리는 나무꾼이 행복한 법이다. 나느냐 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평화롭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나무는 주위와 다투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가 좁으면 좁은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척박하면 척박한 대로 그 처지에 맞추며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것보다 큰 축복은 없다. 힘들다고 움츠러들지 말고 예전의 기개, 따뜻하던 정을 흉내라도 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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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2016-06-28 14:52:29
좋은 글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