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글쓰기 도우미에게 도움을 받으면, 혼자서 할 때보다 과제를 충실하게 작성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합니다. 그래서 일정하지는 않지만 글쓰기센터에 자주 옵니다.”
2015년 10월 19일 낮 2시. 독일 함부르크 알스터테라세 1번지에 위치한 함부르크대학교 학생종합민원센터 5층의 글쓰기센터. 글쓰기 상담을 받으러 온 한 여학생은 “글쓰기 과제를 받을 때마다 글쓰기센터에 오는 편”이라며 “글을 쓸 때 잘 풀리지 않으면 도우미에게 질문을 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말했다.
더불어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한다는 이 학생은 “글쓰기센터를 이용하면서부터 주장을 탄탄하게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도록 노력하게 됐다”면서 “이젠 글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할지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예전엔 글을 쓸 때 ‘아, 이건 중요해’, ‘이것은 정말 흥미롭네’ 하면서 곧바로 판단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왜 중요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서 천천히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보곤 합니다.”
글쓰기 도우미들에게 어떤 부분을 많이 지적받았냐고 묻자 이렇게 답변했다.
“두루뭉술한 표현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고쳐 쓰라고 하시네요. 글을 쓸 때는 전달하려는 핵심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글엔 항상 무언가 불명확한 게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문장과 단락, 글 전체에서 일맥상통하는 중심생각을 뚜렷하게 설정하도록 애를 쓰려고 합니다. 요즘 ‘어린이 보호’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개요를 짜는 중인데 도우미들이 지적한 것에 참고하려는 중입니다.”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는 독일연방교육부(BMBF)의 재정 지원을 받는 대학 글쓰기센터 40여 곳 중의 하나다. 2011년 6월에 설립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피어 튜터링(Peer Tutoring) 식의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이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12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매주 월요일마다 90분간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1대1로 첨삭지도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에서는 글쓰기 도우미들이 글쓰기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곳에는 학술 글쓰기 도우미들 외에 학생들로 구성된 글쓰기 도우미(튜터)들도 수십 명이 활동하고 있다. 글쓰기 도우미로 참가하고 싶은 학생들은 별도의 등록 없이 간단한 인터뷰와 면접을 통과하면 된다. 글쓰기센터의 목표는 글쓰기 과제를 할 때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글쓰기 도우미를 양성하는 데 있다.
10월 19일에 열린 이 대학 글쓰기 도우미들의 세미나를 참관한 뒤 대학원 과정에 있는 글쓰기 도우미 2명을 인터뷰했다. 이름은 예명으로 처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글쓰기 도우미로 활동한 지 얼마나 됐나요?
우테 펜들러, 에일린 프리쉐: “지난해 여름에 시작했습니다. 보통 1~2학기 정도 글쓰기 도우미 업무를 교육받고 정식으로 도우미가 됩니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해 주면서 도우미들의 문장력도 많이 향상된다고 봅니다.”
- 일주일에 몇 번이나 나와서 지도를 하나요?
우테 펜들러: “항상 월요일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일을 합니다. 그 외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더 나오는데 그 시간은 항상 다릅니다. 하지만 보통은 한 달에 20시간 정도 일하죠.”
에일린 프리쉐: “저는 보통 한 달에 10시간 정도 글쓰기센터에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컨퍼런스나 행사 등이 있으면 일을 더 할 때도 있죠.”
- 학생들이 가져오는 글의 종류가 보통 어떤 것이 있나요?
우테 펜들러: “통상적으로 과제물을 많이 들고 옵니다. 학사, 석사, 박사, 다양한 과정의 학생들이 전공에 관한 글을 가져오지요. 수필(에세이), 인턴십 또는 취업을 위한 지원서도 많은 편입니다.”
- 글쓰기 파일을 들고 올 때 보통 출력을 해서 들고 오나요, 아니면 파일 자체를 들고 오나요?
우테 펜들러: “노트북에 담아서 들고 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사실 그게 편합니다. 텍스트를 바로바로 고칠 수 있거든요. 지적사항을 적은 파일 자체를 줄 수 있으니까요.”
- 글을 직접 고쳐주시는 건 아니죠?
우테 펜들러: “네. 글을 직접 고쳐주지는 않아요. 보통 학생들이 쓴 글 옆에 글의 문제점을 적어주곤 합니다. ‘이 글을 이렇게 써도 괜찮은가?’ 하면서요.”
- 학생 한 명이 지금 글쓰기센터에 막 들어왔다고 가정을 하고, 보통 어떻게 대해 주는지 설명을 해 주세요.
우테 펜들러: “논리적으로 글을 썼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라고 해요. 끊임없이 질문을 하죠. ‘왜?’라는 질문이요. ‘이 단락을 왜 여기로 배치했는가?’, ‘이 단락을 다른 데로 보낼 수는 없는가?’ 하면서 질문을 합니다. 문장이 비논리적이라 이해가 안 되면 좀 더 명확한 어휘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해 주지요.”
에일린 프리쉐: “구조적, 문법적 문제를 많이 짚어주는 편이에요. 독일어 글쓰기는 구조와 문법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죠. 앞 답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호한 부분은 항상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바꾸라고 조언을 하는 편이에요. 문장 안 어휘의 순서들도 중요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야 하고, 어떤 어휘가 중요한지를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주제가 흔들리지 않아요.”
- 글쓰기 도우미를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든가요?
우테 펜들러: “힘든 건 그다지 없습니다. 굳이 언급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일단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는 게 약간 어렵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가끔 상담을 하는 도중 제가 생각하기에 기발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바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학생이 그 자리에서나 집에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거든요. 빨리 알려주고 싶지만 며칠 참고 지내는 게 조금 힘들기도 합니다.”
에일린 프리쉐: “저도 힘든 점은 없습니다. 도우미들끼리 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정말 좋죠. 예를 들어 우리 조는 4명인데, 제가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언어학을 전공한 동료가 있어서 거기에 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협력을 하면서 지도할 수 있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글쓰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우테 펜들러: “우선,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받기 위해서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읽은 글의 주제를 더 많이, 그리고 세심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읽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직접 글을 써보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해지죠.”
에일린 프리쉐: “그 말에 동의합니다. 다시 한 번 그 글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글의 주제를 확인 점검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읽어보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테 펜들러: “한마디로 정리를 잘해 ‘준비된 글’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생각하고, 또 치밀하게 정리를 해 작성한 글을 말합니다. 글의 주제와 구조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훌륭한 글이 된다고 봅니다.”
에일린 프리쉐: “저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나는 글을 보면 뿌듯하죠. 또 하나 덧붙이자면, 자기의 생각을 담은 글, 즉 ‘나의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학생들에게 글쓰기 상담을 해 주는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에일린 프리쉐: “먼저, 어떤 글쓰기 도우미가 상담을 해줄 것인지를 정합니다. 도우미가 정해지면 학생에게 무엇을 집중적으로 점검받고 싶은지 설명하게 합니다. 학생 스스로 설명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도우미와 학생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상담을 진행합니다.”
- 보통 학생들이 글쓰기에서 어떤 실수를 많이 하나요?
에일린 프리쉐: “아주 다양해요. 그래서 보통 질문을 받아주는 것을 위주로 진행합니다. 학생들 대부분은 모국어가 독일어가 아니기 때문에 문법이나 구조적인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곤 해요.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를 어려워하고, 가끔 은어나 구어체를 쓰는 사례도 있습니다.”
- 지도했던 학생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에일린 프리쉐: “아시아에서 온,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어요. 그는 철학을 전공했는데, 철학이 원래 독일어를 잘하는 사람도 공부하기 힘든 학문이거든요. 처음에는 글의 문법이나 문장 구조가 거의 맞지 않았지만 점점 좋아져 결국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상대할 때 어떤 특이점이 있나요?
우테 펜들러: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보통 자신의 언어로 먼저 쓰고 독일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글을 씁니다. 그래서 독일어로는 어색하거나 잘 맞지 않는 문장이나 구조가 가끔 발견되곤 합니다.”
에일린 프리쉐: “앞에 언급했듯이, 은어나 구어체를 쓰는 사례가 아주 많아요. 그럴 때는 ‘이 글을 이렇게 둬도 되겠니?’ 하고 묻습니다.”
- 두 분이 글쓰기 도우미로 선발된 것은 글을 잘 쓰기 때문일 겁니다. 글쓰기 도우미로 왜 선발됐다고 생각하나요?
우테 펜들러: “‘공식적인 선발’은 없습니다. 글쓰기 도우미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먼저 교수나 글쓰기센터로 연락을 합니다. 직접 찾아와서 신청을 한 뒤 교육을 받게 되죠.”
에일린 프리쉐: “저는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이란어를 전공했고 또 함부르크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서 학사를 했습니다. 글쓰기 센터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다른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함부르크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할 때 글쓰기에 어려움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함부르크 글쓰기 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글쓰기 실력이 많이 향상됐어요.”
- 보람이 많겠군요.
에일린 프리쉐: “글쓰기 도우미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다른 학생들과 글쓰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도우미가 돼 상담을 시작하면서 제가 받은 도움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줄 수 있다는 데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 이유들 때문에 저는 함부르크 글쓰기 센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여러 다른 대학에도 글쓰기 센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함부르크 글쓰기 센터가 얼마나 좋은지 자랑을 해 주세요.
우테 펜들러: “우리는 어떻게 컴퓨터로 글을 쓰는지, 또 어떻게 글을 구성하는지 배웁니다. 책을 읽고 어떻게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배우고요. 배운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한편, 일부 대학의 글쓰기 센터에서는 글쓰기 상담 횟수가 주 1회만 가능하지만 함부르크대학 글쓰기 센터는 제한이 없다. 2011년 12월부터 2013년 9월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총 85명의 학생이 함부르크대 글쓰기센터에서 글쓰기 상담을 받았다. 80명은 피어 튜터링 시간에 상담을 받았고, 5명은 온라인 지도를 받거나 월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