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아직 너의 계절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황태영 칼럼] 아직 너의 계절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 독서신문
  • 승인 2016.05.20 1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시골의 너른 들판에 매화, 장미, 국화가 같이 자라고 있었다. 매화가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눈보라를 뚫고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 그 꼿꼿하고 굴하지 않는 기상이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장미와 국화가 말했다. “고결한 지조와 정절의 그 깊은 향을 배우고 싶습니다.” 매화가 가르침을 주었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매 순간 순간 향기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겨울이 없었다면 나의 향기도 없었을 것이다. 향기가 없는 꽃은 죽은 꽃에 불과하다. 눈보라가 있기에 나의 삶은 빛이 난다.” 장미와 국화는 매화 향에 취해 숨죽이고 지냈다.

초여름이 되자 장미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장미가 봐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서있는 매화에게 말했다. “일찍 핀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꽃은 한번을 피더라도 화려하게 피어야 한다.” 그리고 국화에게도 말했다. “모두들 나를 여왕으로 받들고 있다. 같은 조건이 주어졌는데 너는 어떻게 눈길한번 끌지 못하고 늘 그 모양이냐.” 국화는 장미의 화려함에 주눅이 들었다.

자신도 아름답게 꽃피고 싶었다. 매화의 기상도 닮고 싶었고 장미처럼 화려해 보고도 싶었다. 국화인들 어찌 천덕꾸러기로 남고 싶었겠는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다. 발버둥치고 노력해 보았지만 그러나 꽃을 피울 수는 없었다. 국화는 무능함을 자책하며 흐느끼기만 했다.

늦가을이 되어 찬 서리가 내리자 꽃들이 고개를 떨구었다. 화려하고 잘남을 뽐내던 모든 화초들이 ‘추상(秋霜)’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서야 국화는 순결하게 피어났다. 국화는 부잣집 화단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들판이나 논두렁에서 자연스레 빛난다. 귀천을 따지지 않지만 늦가을 서리를 뚫고 불굴의 기백으로 고결함을 유지한다. 국화는 오상고절(傲霜高節)의 기개를 가졌지만 다른 꽃들에게 차례를 다 양보하고 늦게 피어난다. 겸양지덕이 있기에 군자의 꽃으로 추앙받는다.

민들레 씨앗이 국화를 부러워하며 말했다. “저도 향기롭게 피어나고 싶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국화가 말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 아직 너의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자책하거나 다른 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희망은 없는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는 너에게도 최고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너답게 최선을 다해 피어나기만 하면 된다.”

싹을 뽑아 성장을 도와준다는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말이 있다.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중국 송(宋)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다. 그는 자기 논에 심은 모가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매일 논에 나가 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모보다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았다. 그는 모가 자라는 것을 도와줄 궁리를 하다가 모를 약간 위로 잡아당겨 보았다.

그러자 모가 더 자란 듯이 보였다. 자신을 얻은 농부는 하루 종일 논에 있는 모를 전부 뽑아 크기를 높게 하였다. 지쳐서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자신이 한일을 자랑하였다. 기겁한 식구들이 다음날 논에 나가보니 모는 모두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었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일을 급하게 하려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하게 된다. 욕교반졸(欲巧反拙), 잘 만들려고 너무 기교를 부리다보면 도리어 졸렬하게 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결실을 보게 된다. 강태공은 80년을 기다렸다 그는 출사 이전 혹독한 고난의 세월을 살았다. 대조리를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기도 했고 소금과 밀가루 장사도 했으며 국수장사, 음식점, 소나 돼지를 잡아 파는 백정노릇까지도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잘 안되자 배운 글로 사주풀이를 하여 연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을 확신했고 최상의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줄 알았다. 궁팔십(窮八十), 강태공은 80년 동안은 부인이 도망갈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때를 기다렸고 달팔십(達八十), 마침내 문왕을 만나 80세 이후 출사하여 80년 동안 화려하게 그 뜻을 펼쳤다. 국화는 가장 화려한 계절인 봄, 여름을 인내했기에 늦가을 커다란 감동을 줄 수가 있다. 잘난 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멸시와 천대에 화내고 대꾸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시기를 준비해 가야 한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너의 계절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