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26)] “실험과 토론으로 진행하는 독일 고교의 과학수업, 한국의 칠판 판서식 강의와는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26)] “실험과 토론으로 진행하는 독일 고교의 과학수업, 한국의 칠판 판서식 강의와는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5.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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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독일 함부르크 ‘소피 마라트 슐레’ 강신규 교사의 물리 수업 참관기
▲ '훅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는 강신규 교사. 8학년 물리 실험 교실에서 그는 각종 교육 기자재를 활용해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스스로 알아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과제연구(R&E),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2015년 10월 21일 낮 2시, 독일 함부르크의 소피 바라트 슐레(Sophie Barat Schule)의 8학년 물리 실험 교실. 독일 교민 2세인 이 학교의 강신규 교사는 ‘훅의 법칙(Hooke’s law)’을 각종 교육 기자재를 활용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훅의 법칙’은 힘이 작용해 물체가 변형될 때 변형의 정도는 힘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1678년 영국의 R. Hooke이 용수철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실험을 하면서 발견했다.

강 교사는 2012년부터 물리를 가르치고 있다. ‘슐레’는 한국의 고교에 해당한다. 소피 바라트 슐레는 한국으로 치면 특목고 수준의 특별한 학교다. 인문계 일반 고교인 김나지움과는 달리 교사 추천서가 합격을 좌우하는, 함부르크의 최고 명문고다.

강신규 교사는 물리 수업을 기자에게 시연해 보이면서 중간중간 독일의 과학교육을 설명해 줬다. 칠판에 판서하면서 일방적으로 물리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직접 실험을 하고 토론을 하고 발표를 하면서 과학법칙을 이해하게 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강 교사는 “독일의 체계적인 과학 교육이 창의적인 예비 과학기술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독일을 초강대국으로 이끌고 있다”고 했다.

◆ 학생들이 교실에 입장할 때 잔잔하고 평안한 음악 울려 퍼져

강신규 교사는 수업 시작 전에 잔잔하고 평안한 노랫소리를 교실에 울려 퍼지게 했다. 약 3~4분 정도 음악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선다. 책을 꺼내고 수업에 참여할 준비를 한다. 음악이 끝나자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Ich wünsche euch einen wunderschönen guten Morgen”
“Guten Morgen, Herr Kang”
독일어인데도 우리말처럼 정감 있게 느껴진다. 앉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이 앉는다.

“여러분, 그동안 잘 지냈나요?”
선생님의 인사말에 학생들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표정이 어두운 학생 2명에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에 서로 싸운 친구들이다. 선생님이 “이제 그 일은 잊어버리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자 둘의 표정이 밝아진다.

강신규 교사는 “수업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과 교감하면서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귀띔해 줬다. 마음의 문을 열고 수업을 듣게 할 준비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별로 토론하고 실험을 하는 수업이 많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 스마트 칠판을 활용해 무게와 질량(Masse und Spiralfeder)에 관한 스프링 상수 실험을 하는 장면.

◆ 스마트 칠판에 ‘훅의 법칙’ 이미지 보여주고 스스로 깨닫게 유도

스마트 칠판에는 오늘의 진도와 수업 일정이 적혀 있다. 선생님은 수업 전에 7분간 쪽지시험을 실시한다.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간략하게 점검하는 것이다. 테스트는 A조와 B조로 나눠 줄마다 다른 문제로 진행한다. 옆자리 짝꿍과 부정행위를 모의할 수가 없다. 쪽지시험이 끝나는 대로, 숙제검사를 하고 5분 정도 대화를 한다.

그 다음, 선생님은 학생들이 스마트 칠판에 집중하게 한다. ‘훅의 법칙’을 설명하려는 것이지만, 학생들에게는 그것을 먼저 밝히지는 않는다. 화면에 ‘크라프트 포스’라는 글자가 떴다. 무게와 질량(Masse und Spiralfeder)에 관한 스프링 상수 실험이다.

“여러분, 화면을 보면서 2분간 생각해 보세요.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이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비슷한 실험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실험 프로그램을 설명해 주는 앱도 화면에 띄웠다. 설명은 일단 생략하고 여러 장면을 하나하나 화면에 이동시켜 가면서 띄워 놓는다.

"이것이 대체 무엇일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깊이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휘황찬란하게 화면에 뜬 것이 갑자기 없어지기도 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옆 학생에게 말을 거느라 시끌시끌했던 일부 학생들도 어느새 화면에 초롱초롱한 눈을 고정시킨다. 화면의 이미지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또다시 2분간 생각할 시간을 준 뒤 몇 마디 설명을 한다.

◆ 먼저 혼자 생각하게 한 뒤에 친구들과 의견 나누도록 지도

“무게 100g을 스프링에 걸어 보겠습니다. 스프링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잘 살펴보셔요.”
선생님이 손으로 화면을 움직인다. 손을 대면 화면이 흔들리고 자의 눈금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진다. 저울의 무게를 뗄 때는 ‘핑~’ 하면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적혀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화면이 바뀔수록 아이들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선생님이 소리를 내어 신호를 보낸다.

“EA!!!”(Einzelarbeitsphase)
‘EA'는 옆 학생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골똘히 생각해 보라는 암호다.
“………….”
“………….”

2분간 조용한 시간이 지속된다. 이윽고 3분간 ‘PA’(Partnerarbeitsphase) 시간이 이어진다. 짝꿍이나 앞뒤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독일어로 ‘DAB’ (Denken-Austauschen-Besprechen, english: TPS Think-Pair-Share)라고 한다. 짝꿍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나누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일방적인 설명을 무작정 듣는 대신 혼자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서 오늘 배울 교과 내용에 흥미를 붙인다. 수업 내용에 좀 더 능동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수업은 2분간 혼자 생각하고, 2분간 짝과 이야기를 나누고, 3분간 토론을 한 뒤, 15분간 교실의 학생 전체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교사가 이렇게 수업 방향을 잡은 뒤에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질서 있는 교실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강신규 교사는 “학생들이 점층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서 “혼자 생각하던 것을 짝꿍과 나누고, 그 다음에는 학생들 전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해 교실 분위기가 산만해진다고 했다.

▲ 수업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참여하는 독일 학생들. 강신규 교사는 아이들이 차례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 정답이든 아니든 일단 학생들의 답변 내용을 최대한 수집

“선생님이 보여준 것을 잘 관찰했나요? 이제부터 여러분이 설명해 보셔요. 누가 해 볼까요.”
“선생님, 저요!!”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든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발표한다. 답변을 마친 학생은 다음번 질문에 답변할 학생을 지명하고 그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의 질문 못지않게 예리했다.

“이 실험의 원리를 이야기해 보셔요. 어떤 과정에 의해서 실험이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학생 다음에는 여학생이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들이 차례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답변에 다른 학생들이 평가하지 못하게 한다. 나중에는 서로 비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실험 화면에 등장하는 자가 얼마나 늘어나고 무게가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정답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아이들이 발표한 내용을 최대한 모은다.

강신규 교사는 “이런 프로그램도 없이 단순히 칠판 판서로 진행하는 수업은 아이들을 집중하게 만들기 어렵다”면서 “학생들이 산만해 보이면, 실험 화면에서 무언가를 떨어뜨려서 큰 소리가 나게 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서 수업에 집중하게 한다”고 밝혔다. 교사가 일일이 호명하는 대신 아이들이 교대로 답변하게 하면 수업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 혼자서도 복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내려받는 사이트 공개

“100g을 첫 스프링에 넣으면 10cm가 늘어납니다. 250g을 넣으면 더 늘어나지요. 이렇게 할 때마다 무게가 늘어나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100g을 첫 번째와 두 번째 스프링에 넣으면 둘 다 10cm가 늘어나지요. 스프링 상수가 같고, 복원력이 같으니, 늘어나는 길이도 같을 수 있는 겁니다.”

선생님은 직접 실험을 하면서 학생들이 확실하게 이해를 하도록 유도한다. 용수철 줄을 더 강하게 그리면 줄 높이는 더 높아진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보여주는 실험을 보면서 스스로 과학적 원리를 깨닫는다. 가끔은 학생들을 교단으로 나오게 한 뒤 직접 무게를 달리 달게 하면서 자로 세로 길이를 재게 하기도 한다. 간혹 무게추를 떨어뜨려 ‘쿵~’ 하는 소리를 나기도 한다. 깜짝 놀란 그 아이는 당황하고 다른 학생들은 재미를 느낀다.

이제 본격적인 실험시간이다. 아이들이 완전히 이해한 뒤에야 본 실험에 들어간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준다. 실험 결과를 메모하는 종이다. 실험 과정을 조리 있게 작성할 수 있도록 답안 틀을 미리 제공하는 것이다. 교실에는 실험 준비실에서 미리 가져다 놓은 도구들이 잔뜩 쌓여 있다.

“실험 시간은 모두 50분입니다. 실험 재료를 가져오는 데 5분, 다시 가져다 놓는 데는 5분이 필요할 겁니다. 50분은 이것을 모두 포함한 시간입니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준 대로 실험을 한 뒤 보고서에 기록하면 됩니다.” 학생들은 실험 도구를 각자 책상으로 가져간다. 교사가 종이를 주면 정해진 틀에 맞추어 종이를 채워간다.

“스프링 상수를 알기 위해 삼각대에 스프링을 걸어놓고 50g, 100g, 150g, 200g, 250g 등의 무게를 순서에 따라 달아보셔요. 그 후 늘어나는 길이를 자로 재보기 바랍니다. 훅의 법칙을 이용해서 스프링 상수를 계산하면 됩니다.”

▲ 강 교수는 실험을 많이 하는 수업 특성 상 교사가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실험을 할 때 교사는 숙제 검사를 한다. 학생들은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교사는 성심성의껏 답변해 준다. 실험을 하다가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질문한다.

아이들은 실험하면서 과학 법칙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동안 교사는 한 걸음 물러서 학생들이 실험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교사가 숙제를 검사하는 동안 실험을 끝낸 학생은 자리를 정리하고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실험 프로토콜(protokoll)을 써야 한다. 실험이 잘 안 되는 학생들은 칠판에 이름이 적혀있는 학생들에게 질문해도 된다. 학생들끼리 서로 돕는 방법이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이 실험을 해 알아낸 것은 ‘훅의 법칙’에 해당한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훅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직접 실험을 통해 법칙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강 교사는 “실험을 자주 하기 때문에 교사가 항상 준비를 잘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는 인터넷 주소를 알려준다.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시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 시험문제는 오지선다형 대신 글로 서술하는 방식 출제

물리 시험은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형식으로 출제된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시험 문제도 한국의 오지선다형 문제와는 차이가 있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써야 한다. 물리 시험은 한 학기에 한 차례, 90분 동안 진행한다. 시험은 물리 개념을 글로 쓰고, 서술형으로 답안을 적는 방식이다.

“여러분, 시험이 기다려지나요?”
“수업 내용을 잘 이해했습니다. 문제 없습니다.”
교사의 물음에 답해 오는 학생들의 눈에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총기가 서려 있다.

한편, 독일의 고등학교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술에 빠지듯이 휴대폰에 지나치게 중독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이다.

“휴대폰이 있으면 수업에 방해가 됩니다. 만약 학생이 휴대폰을 사용하다 걸리면 곧장 선생님께 휴대폰을 내야 합니다. 휴대폰을 찾으려면 3일 뒤 교장 선생님께 가야 합니다. 학생들이 수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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