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미꾸라지는 습한 곳에서 살고 새는 나무에서 산다
[황태영 칼럼] 미꾸라지는 습한 곳에서 살고 새는 나무에서 산다
  • 독서신문
  • 승인 2016.05.0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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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돈을 많이 번 회장이 고급술을 한잔 사며 작가 친구에게 말했다. "읽히지도 않는 책,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왜 쓰고 왜 그리느냐?" 작가가 답했다. "시험 전날은 최고급 양주를 마셔도 즐거움이 없다. 시험을 잘 치르고 나왔을 때 맛보는 그 시원한 공기보다 더 맛나고 상쾌한 술은 없다. 당신은 돈을 벌어 비싼 술을 마실 때 기쁨을 얻겠지만 작가는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 시험이 끝난 기쁨을 얻는다. 그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그 어떤 기쁨보다 크고 상큼하다.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만족을 주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벌기위해 노력한다. 작가의 최고 만족은 술이 아니라 작품이다."자락차불위피(自樂此不爲疲),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돈 들여 술 마시고 고급차를 사지 않더라도 이미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최고로 여기고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2014년 말 대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젊은이가 갑자기 현금 800만원을 도로에 뿌렸다. 많은 행인들이 횡재한 듯 이 돈을 주워갔다. 하지만 이 돈이 젊은이의 할아버지가 평생 고물 수집을 하여 모은 돈이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손자를 위해 물려준 귀한 돈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기적처럼 사라진 돈이 주인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 30대 남성이 지구대를 찾아 100만 원을 돌려줬고 한 40대 여성은 어머니가 주운 돈이라며 15만 원을 내놓고 돌아갔다. 주운 돈을 자발적으로 돌려주려는 시민들의 발길은 물론 이러한 사연에 감동을 받은 시민들의 '온정 보태기' 행렬이 이어져 원래 잃은 돈보다 95만원이 더 모여졌다. 그러자 젊은이의 어머니는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초과 금액은 받지 않고 모두 어려운 분들을 돕는 데 쓰겠다고 했다. 돈이 최고였다면 주운 돈을 돌려주지도 또 초과된 돈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삶을 보람되고 기쁘게 하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2016년 초 수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30대 청년이 600만원이 든 현금봉투를 차량 위에 올려둔 채 운전을 했고 차도에는 현금이 흩날렸다. 한순간의 실수로 순식간에 큰돈을 잃어버린 청년은 곤혹스럽고 허탈했다. 경찰이 발 빠르게 사건 발생 장소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잃어버렸던 돈 대부분이 환수됐다. 시민들이 자진해서 주은 돈을 경찰서로 가져온 것이다. 청년은 사고 발생 5시간 만에 잃어버렸던 돈 대부분을 돌려받았다. 돈을 돌려준 한 시민이 말했다. “돈을 잃어버린 누군가는 무척 가슴아파할 텐데 모른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담은 명곡보다 가슴을 더 뭉클하게 한다. 각박한 세상이라 하지만 높은 시민의식은 실핏줄처럼 세상 곳곳에 온기를 전한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 절망하지만 시민들을 보면 그래도 희망을 갖게 된다.

미꾸라지는 습한 곳에서 살고 새는 나무에서 산다. 각자가 사는 방식이 다르고 즐거움을 얻는 방식도 다르다. 나무가 좋고 습지가 나쁜 것이 아니다. 습지도 옳고 나무도 옳다. 나무에서 살건 습지에서 살건 평생 가는 친한 벗의 숫자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돈이 많은 곳에서 사느냐 적은 곳에서 사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몇 안되는 주변의 사람들과 얼마나 따뜻하게 정을 나누며 사느냐이다.

어느 학교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했다. 몸이 불편하여 항상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한 학생의 글이 선생님을 아프게 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 어머니에게서 내가 받은 모든 은혜와 고마움을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서 무조건 보답하면서 살고 싶다. 이 생에선 내가 어머니의 고마움에 보답하며 사는 건 너무나 힘들기에…… 제발… 제발 다음 생에선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서 그 무한한 사랑과 정성을 꼭 갚아드리고 싶다.”

삶에는 분명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살아온 동안 돈이 없었음을 안타까워 할 것인가, 정이 없었음을 안타까워 할 것인가. 돈이 많다고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고 고립되어 산다면 오히려 돈 때문에 삶이 불행해진다. 누구를 부러워할 것도 자책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만족이다.

백 명이 있으면 만족을 얻는 방법도 백가지가 나온다. 고급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부동산을 보러 다니고 술을 마시는 방법도 있고 작품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내 마음이 끌리는 모든 삶이 정답이고 옳다.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이며 그 누구와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나답게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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