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시와 섬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자 - 김준 『섬: 살이』
[서평] 도시와 섬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자 - 김준 『섬: 살이』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4.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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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도시 사람들은 섬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 동경의 속내는 고독하리만치 아름다운 자연, 여백이 있는 시간과 공간에 자신을 옮겨 놓고 싶은 마음이 있으리라. 저자는 이를 ‘셀프 유배’라고 했다. 도시인들은 막연히 귀촌 귀농 같은 단어에 꿈꾸는 풍경이 덧칠해진 막연한 사랑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는 섬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저자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그는 바다박사다. 26년째 전국의 섬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니 섬 박사라는 말도 맞다. 그가 하는 말은 서정적 차원이 아닌 실존의 현실을 가리킨다.

그러면서도 읽을수록 자꾸 도시인들에겐 섬살이를 자극한다. 전적으로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생생한 사진과 감칠맛나는 문장이 죄라면 죄다. 섬사람들과 나누는 저자의 대화는 도시인들 같은 대화와는 전혀 딴판이다. 주어 술어가 분명치 않아도 다 알아듣고 저만치서 들어도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섬사람들의 민낯을 저자를 통해 대신 본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책 어디를 봐도 섬사람 민낯이 아닌 게 없지만 한 예를 들어보자.

‘대문이 없는 돌담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이상했다. 할머니가 전혀 낌새를 못 채셨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왔어?” 나지막한 목소리. 그제야 인기척을 느끼고는 경계의 몸짓을 보이셨다. 대문도 없는 집 마당에 들어선 이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체취를 맡고서 알았을 것이다. 일주일에 몇 번 도움을 주는 분이 오시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중략) 할머니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에 지폐 한 장을 꼭 쥐어드리고는 돌아 나왔다. 그 뒤로 섬에 갈 때마다 할머니 집에 들어 인기척을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집이 온데간데없고 새하얀 조립식 집이 지어졌고 마늘밭도 말끔히 사라졌다. 틀림없이 할머니에게 변고가 생겼다.’

저자는 이렇게 섬을 돌아다닌다. 마실 다니듯 한다. 그런데 책을 보면 언제 다 사진 찍고 취재하는지, 부러울 지경이다.

저자는 책을 5개 파트로 나누었다. 섬 사람, 섬 살림, 섬 일, 섬 삼시세끼, 섬 풍습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어디를 펴 읽어도 상관없는 것 같다. 다 섬 이야기이고 고기 잡는 이야기, 먹는 이야기 등이기 때문이다. (도시나 섬이나) 다 사람 사는 얘기 아니냐 반문하면 딱히 둘러댈 말은 없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의 중심은 ‘살림’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도시인 못지않은 치열한 삶의 한 복판을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다. 특히 장소가 섬이라는 특수성을 배제하면 설명이 안된다는 말이다.

껍질이 발라지고 머리통이 꿰어져 나란히 흰 속살을 꾸덕꾸덕 말리는 생선과 함께 그 집안의 빨래가 빨랫줄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빨래라는 한 풍경을 사진과 함께 잡은 글이다. 양말 한 켤레 속 옷 한 벌 널려 있는 집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빨랫줄을 보면 그 집 밥상까지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한쪽에서 말라가고 있는 생선이 저녁 쯤 아니면 아침에 밥상에 오르겠지.

섬에서는 등짐을 지는 게 남성의 일만은 아니다. 특히 제주에서는 여자들이 물건을 머리에 이지 않고 등에 지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머리에 짐을 올리고 나긋나긋 걸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말한다. 등에 무언가 진다는 것은 순탄치 않은 삶을 지는 것이다 라고.

혹시 바다 맛을 아는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맛은 어찌 알겠는가. 저자는 말한다. ‘그 맛은 낮에 마르고 밤에 깊어간다’ 라고. 바로 아래 사진을 보니 알겠다. 빨랫줄에 죽 몸을 늘어뜨리고 한낮의 태양에 속살을 아낌없이 내주더니 이제 저 노을빛엔 속살을 지탱하는 굵은 뼈마디가 뚝뚝 소리를 내며 온 몸을 푸는 것 같다. 햇볕에 속살이 마르고 노을과 별과 함께 맛이 깊어가는 게 다 누구의 수고인가.

어부는 바다가 깨어나기 전에 바다로 간다. 농부가 매일 삽을 어깨에 메고 논틀밭틀길을 걷듯이 어부는 작은 배를 타고 하릴없이 바다를 오간다. 그런 한결같은 보살핌에 대한 보상으로 고기 한 마리, 미역 한 줄기를 얻는다.
이런 대목도 눈에 들어온다. 갯벌은 여성이다. 어머니가 지킨다. 그렇다. 할머니들이 걸을 수 있어 굴을 캐는 게 아니라 바구니를 채워야 할 굴이 있기에 걷는다. 팔순 할머니가 겨울에도 갯벌로 걸어가는 것은 거기에 굴밭이 있기 때문이다.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르듯이, 굴이 있기에 갯벌을 걷는다. 갯일은 명예퇴직도 정년도 없다. 귀여운 손자들 손에 용돈 쥐어주려면 오늘도 갯벌을 걸어야 한다. 할머니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섬에는 작은 상점 하나 없는 곳이 많다. 사람 사는 곳에 가게가 왜 없냐고? 마을부녀회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들이 없으니 과자부스러기 등 찾는 이 없고 생필품도 뭍에 다녀오면서 바리바리 사서 가져오며 주문만 하면 목포든 군산이든 인천이든 다 보내주니 섬에선 가게가 운영될 수 없다. 가끔 사정 모르는 육지 것들이 지갑에 돈만 넣고 왔다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소금을 알면 바다를 좀 안다 할 수 있을까. 저자가 소개한 류시화의 시 ‘소금’ 일부를 보자.

소금이 / 바다의 상처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 흰 눈처럼 /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섬: 살이
김준 지음 | 가지 펴냄 | 304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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