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무지개빛이 된 눈물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무지개빛이 된 눈물
  • 독서신문
  • 승인 2016.04.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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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지음 『인생 수업』을 읽고

▲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어린 날 잦은 외도로 아버진 가정을 등한시 했다. 가장이 된 어머니는 땔감까지 해결하여야 했다. 어머니는 팔뚝에 노란 완장을 찬 산지기와 숨바꼭질을 하며 땔감을 구해왔다. 땔감을 구하지 못하는 날엔 냉방에서 잠을 자야 한다. 땔감이라야 갈퀴로 산등성이에 쌓인 낙엽을 긁어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하잘 것 없는 낙엽이지만 우리 가족에겐 심신을 덥혀주는 유일한 온기의 매개체였다. 낙엽을 긁다가 산 주인에게 발각되어 땔감을 구하지 못할 때는 혹한의 겨울 냉기 도는 방안에서 온 가족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심한 고열과 오한으로 얼음장 같은 구들장 위에 누워서 몹시 앓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와 어린 남동생은 어머니를 대신하여 뒷동산에 올랐다. 산엔 아름드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낙엽은 고사하고 삭정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산지기 눈을 피해 땔감을 해갔기 때문이다.
 
생솔가지를 낫으로 찍기 위하여 나무 위를 올라야 했다. 나는 한 손엔 낫을 들고 소나무에 올랐다. 가까스로 나뭇가지에 손이 닿아 소복하게 흰 눈을 이고 있는 나뭇가지를 낫으로 찍었다. 이 때 갑자기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산지기의 음성이 저만큼서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한걸음에 달려온 산지기가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소나무 위에 오른 나와 밑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동생을 번갈아 바라보던 산지기는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동생의 따귀를 힘껏 후려쳤다.

나는 산지기의 고압적인 태도에 겁이나 얼결에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의 따귀를 때리는 것이다.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뺨이 얼얼하더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에게 따귀를 맞은 동생은 귀를 움켜쥐며 울었다. 그런 동생을 얼싸안고 함께 울었다. 나와 동생을 때렸던 산지기는 대단한 힘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내 눈엔 그런 산지기의 모습이 앞산보다 더 커보였다. 그 때 어린 가슴에 받은 상처는 훗날 힘에 대한 동경심을 증폭하기에 충분했다. 어른이 되면 꼭 힘 센 사람이 돼서 동생을 때려 고막을 터지게 한 그 산지기를 보기 좋게 때려눕히고 싶었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추억이다.

철이 들면서 힘을 갖춘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터득했다. 금력(金力)이라는 힘이 물리적 완력(腕力)보다 단연 앞선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것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렸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를 응시하노라니 인생에 힘이 될 만한 최소한의 요소를 갖추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딸아이들이 자라서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생활도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또 한편 가슴에 송송 구멍이 뚫린 듯 허허롭기도 하다. 이 허허로움은 물질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듯하다. 걸핏하면 손에 닿지 않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다.

우연히 들른 산사에서 부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합장 재배를 해 본다. 절을 올릴 때마다 내가 부처님께 무엇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친정어머니 건강하시게 보살펴 주세요. 딸자식들 좋은 신랑감 만나게 해주세요.’ 분명 이렇게 고(告)하고 있다. 이렇듯 신에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조차 부를 좇고 있음에 스스로 놀랐다.

그 깨우침도 법륜 스님의『인생 수업』이라는 자성부(自省賦)에서 얻은 힘이다.'부족하다 느끼면 가난하고, 소유함을 느끼면 부자다'라는 스님의 언술이 인상 깊다. 이 글 중 ‘우리는 먹고살만한데도 늘 돈에 쫓기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얻을 생각만 하느라 절에 와도 부처님에게 자꾸 뭔가 달라고만 합니다.’라는 내용은 법륜 스님이 속세 인간들에게 던진 참으로 무서운 경구이기도 하다.
 
자꾸만 달라고 매달린 부처님께 한없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된 허욕을 불전 앞에서 참회한다.
 
어린 날 가난 때문에 보지 못했던 무지개빛을 다시 찾고 싶다. 눈물을 거두는 날 분명 오색 찬연한 무지개는 동쪽 하늘에 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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