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문학 제대로 보기-6] 자코모 레오파르디 (6)
[이탈리아 문학 제대로 보기-6] 자코모 레오파르디 (6)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4.25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정치가 레오파르디

1947년 논문 두 편이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모습을 재평가하는 데 기여했다. 발테르 빈니는 「레오파르디의 새로운 시학」에서 마지막 단계 레오파르디의 영웅적 시학에서 새로움을 강조했고, 체사레 루포리니는 「진보적 레오파르디」에서 반정신주의적이고 반온건주의적 이념의 요소들을 밝히면서 레오파르디를 자유주의적 가톨릭 경향에서 제시된 것보다 “훨씬 더 긴 파도” 위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그런 진보주의 개념은 모호하다는 결점이 있었고, 유물론의 수용은 역사적 차원에서 정치적 무관심을 함축하였다.

레오파르디의 진보주의는 실천적이고 정치적이라기보다 이론적이고 지성적이었다. 그런 관념으로 인해 레오파르디는 언제나 악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삶은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확신했고, 자연의 악, 더 강한 자의 억압이라는 영원한 법칙, 총체적 자유와 행복의 거짓말에 노출된 개개인은 근본적으로 불안하다고 확신했다.

부르주아 체제의 총체적 거부라는 관점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부정적 비판, 마르쿠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의 암시에 비추어 레오파르디를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그런 해석은 반역사적이다. 물질적, 도덕적 요구들과 현실적 조건 사이의 대립은 치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자신은 모순에 뿌리박힌 존재, 즉 필연적으로 불행한 존재이다. 고통과 이기주의를 심화시키는 기존 사회의 이면에는 진정한 존재를 부정하고 단절시키며 개인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차적 차원으로 자연이 있다.

 
불행한 사람은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이렇게 망가진 지상에서 자연은 부정적 가치들을 창출함으로써 스스로를 부정하는 사회가 싹트게 만든다. 사회란 실질적인 반사회성을 뒤덮는 이름이다. 그리하여 레오파르디는 부르주아 유형으로 정의되는 사회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전개한다. 사회란 자연이 활동하는 얼굴일 뿐이기 때문이다. 「금작화」에 묘사된 보편적 형제애의 계획은 부정적 자연-불행-인간의 불안이라는 강한 사슬을 설정한 레오파르디의 이전 유물론적 논리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모티브를 도입한다.

「금작화」는 레오파르디의 정치사상을 열어주는 전제로 제시된다.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보편적 결속에 대한 호소는 「지노 카포니 후작에게 보내는 취소의 시」와 송시 「아리마네에게」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결론을 부정한다. 현실의 분석에서 레오파르디의 관점은 무엇보다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유혹을 포용하지 않으면서 존재와 사물의 총체성과 개인 사이의 근본적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의미에서 형이상학적이다.

1825년 5월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철학자, 특히 형이상학자에게는 고독이 필요하다. 사색하고 성찰하는 사람은, 현재에 살고 세상 속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주고받는 관계 속의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자신에 대해 사색하고 성찰한다. 무엇보다 그것이 그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며, 그의 성찰은 거기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아주 좁은 영역과 아주 제한된 시야를 갖게 된다. 단지 자신과의 관계에서만 고려되는 모든 인류는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해, 또 사물들의 보편성 속에서 무엇일까?

반대로 고독에 익숙한 사람은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 사람들과 자신의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별로 호기심을 갖지도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작고 사소한 주제로 보인다. 오히려 자연의 나머지와 자신의 관계가 주로 그의 관심을 끌며, 세상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고 거의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인 것처럼 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자기 자신, 우주의 일부로서의 사람, 자연, 세상, 존재이며, 실제로 그에게 그것들은 사회에 대한 심오한 주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잡기』 4138-39)

그런 생각은 자아와 총체성과의 관계가 황홀경으로 형상화되는 「무한」에서, 실존적 문제의 최고 종합인 「아시아에서 방황하는 목동의 야상곡」, 인간 또는 반자연으로 형성된 인류와 존재의 세계, 그리고 우주의 일부로서 보편적 사물들과의 관계가 아직 주요 주제인 「금작화」에 이르기까지 레오파르디의 사상에서 변함없는 요소를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레오파르디의 시학

레오파르디의 초기 시학은 그의 문헌학적 형성기의 취향이나 경험과 일치하고, 책을 통한 목가적 유형의 실험성, 번역을 통한 고전으로의 복귀, 신고전주의와의 점진적 접촉, 오시안 유형의 음울한 전기 낭만주의 사이에서 동요하였다. 뒤이어 피에트로 조르다니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시학은 시민적 유형의 고상한 웅변을 지향하였고, 1816년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논쟁에 자극받아 특히 「낭만적 시에 대한 어느 이탈리아인의 논의」(1818)에서 이론적으로 심화되었다. 고전주의 성향은 1819년부터 점차 와해되었는데, 당시 겪고 있던 실존적이고 지성적인 위기와 함께 나타났다.

그해『잡기』의 한 구절에서 이렇게 썼다. “나에게서 총체적인 변화, 고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한 해에, 말하자면 1819년에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데, 당시 시력 약화로 독서를 게을리 하면서 나의 불행을 아주 불길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희망을 버리고, 사물들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 시인에서 전문 철학자가 되기 시작했다.”

아직 레오파르디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의 시가 유일한 시이며 반면 “금세기” 낭만주의자들 고유의 감상적 시는 하나의 “철학, 웅변”이라고 믿었다. 그 구별은 실러의 ‘순수한 시’(고대인들의 순수한 시)와 ‘감상적 시’(근대 낭만주의자들의 감상적 시) 사이의 구별과 비슷하다. 감상적 시는 철학적인 것, 울적함과 동경에 젖은 내면적이고 논쟁적인 영감에 상응한다.

레오파르디의 정신을 지배하는 역사적 비관론은 당시 시민적 쇠락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었던 감상적 시를 평가절하하게 이끌었다. 전원시는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로의 퇴행적 양보나 오염이 없는 감상적 시의 아주 개인적이고 정확한 검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전원시의 선택은 괴로운 자기 내면성의 심화를 의미하고, 과거에 있으면서 아득한 기억으로 복원된 정신의 “상황, 애정, 역사적 모험들”의 투명한 기록을 의미하려는 것이었다. 레오파르디는 ‘무한’, ‘추억’, ‘모호함’, ‘불확정성’에 몰입된 정신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암시들을 분석했다.

“이따금 영혼은 낭만적 상황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되고 한정된 시야를 원할 것이며 또 실제로 원한다. 그 이유는 똑같은 것, 즉 무한에 대한 욕망이다. 그럴 경우에만 시야 속에서 상상력이 작용하고, 환상이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것, 저 나무, 저 울타리, 저 탑이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을 상상하고, 상상의 공간 속에서 방황하며, 만약 시야가 사방으로 확장되면 현실이 상상을 배제할 것이기 때문에 형상화될 수 없는 것들을 형상화한다.” (『잡기』 170-171)

추억의 개념도 근본적인데 “무엇보다 현재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시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시적인 것은 (…) 언제나 멀리 있고, 불확정적이고, 모호한 것 속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중적인 시야에서 그렇다.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 (…) 세상과 대상은 이중적이다. 그는 눈으로 탑과 들판을 보고, 귀로 들판의 소리를 듣고, 동시에 상상력을 통해 또 다른 탑과 다른 들판을 보고, 또 다른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안젤로 조에 주한이탈리아문화원장
불확정적인 것, 추억, 이중적 시야의 시학은 시의 반현실주의적 관념을 함축한다. 아니면 보다 정확히 말하면 황홀한 후광, 꿈처럼 투명한 분위기의 기억 속에서 대상들의 복원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레오파르디의 풍경은 구성적 윤곽에서 아주 확정적이고 구체적이지만 그림 같은 요소가 전혀 없는데, 언제나 회상하는 정신 상태와 연결되고 강렬하게 사색적인 재현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서정시는 진정으로 시적인 유일한 장르이며, 시는 분명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정의된다. “시는 본질적으로 충동 속에 있다.” 따라서 서정시는 노래로, 정신의 “자유롭고 솔직한 표현”으로 분명하게 정의된다.

글 : 안젤로 조에 주한이탈리아문화원장
번역 : 김운찬(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