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혼소송에 저항하는 여인의 恨, 쩔쩔매는 조선 - 『신태영의 이혼소송』
[서평] 이혼소송에 저항하는 여인의 恨, 쩔쩔매는 조선 - 『신태영의 이혼소송』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4.2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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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서문부터 심상치않다. ‘유교적 가부장제는, 드러내놓고 언명하지는 않았지만 복수적 성관계를 긍정하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저자(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이 말은 이 책을 관통하면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역습당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비대칭적 성관계의 기회가 여성의 불만을 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야기의 복판에는 당시의 ‘악녀’ 신태영이라는 한 여성이 있다.

본처와 상처해 재혼한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내쫓는다. 품성이 악하고 시부모 섬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부인을 쫓아낸지 10년 뒤(1704년)에나 이혼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너무너무 이상하고 뒷날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자, 마치 법정 드라마처럼 시간 순으로 따라가보자. 남편 유정기의 이혼 요청에 대해 예조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커지려고 그랬는지 유정기의 친구 임방이 끼어든다. 임방은 공조판서 우참찬 등 높은 벼슬까지 오른 인물이다. 친구 임방은 숙종에게 계사를 올려 이혼시킬 것을 요청한다. 임방은 신태영이 전처의 아들 집에 머물러 있다 아들의 병을 치료하러 아들 집에 간 유정기와 (싸우고) 성을 내어 한밤중에 홀로 걸어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신태영은 집에서 쫓겨나 10년째 전처 아들 집에 의탁해 있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집을 나갔다는 건 다른 남성에 의해 성적으로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임방의 주장이다. 어쨌든 이 일로 유정기는 신태영을 완전히 법적으로 가문에서 내쫓고자 한다. 유교 가부장사회였지만 여성이 남편의 집에서 쫓겨났다해도 정처(正妻)의 지위를 잃은 것은 아니다. 즉, 유정기는 신태영의 정처 지위를 완전히 박탈하려 했던 것이다. 임방은 한밤중에 여자가 홀로 걸어서 달아났음을 지적하면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성적 관계를 암시하는 등 유정기 대신 이혼을 신청한다.

숙종은 임방의 건의를 수용한다. 그런데 곧바로 예조판서 민진후가 임방의 논리를 반박한다. 숙종, 임방, 민진후가 얽히면서 신태영 이혼은 이제 한 개인 한 가문만의 일이 아니라 조정의 중대한 일로 부상한다. 당연히 예조가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 민진후 주장은 ‘어떻게 남편 말만 듣고 이혼시킬 수 있느냐, 신태영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게 요지다. 조사부터 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민진후 주장의 핵심은 “반목하는 자가 근거 없는 말을 얽어 소장을 올려 이이한다면 또한 윤리 강상의 변고가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한 문장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남편의 말만 듣고 이혼 요청을 들어준다면, 이혼이 빈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가부장제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가부장제의 깊은 고민이기도 했다.

부부는 수직관계일까, 수평관계일까. 성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남녀의 친밀한 성적 관계를 절제할 필요가 있다. 율곡 이이는 이 절제의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부 사이에 잠자리에서 흔히 정욕을 삼가지 않아 그 위의를 잃는다. 그러므로 부부가 지나치게 버릇없이 굴지 않고 서로 공경하는 일이 매우 적다’고. 가부장의 권력을 쥔 남성이 아내와의 성적 관계에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할 경우, 그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은 원래 성적 관계인 남-녀가 수직적 권력관계가 될 수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방은 신태영을 먼저 조사하라는 명을 거두고 빨리 이혼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숙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대사헌 송상기가 나서서 이혼 불가의 새로운 논리를 편다. 일단 민진후처럼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이렇게 임방은 세가 불리해지면서 민진후와 송상기의 법리를 앞세우는 견해에 패한다.

얼마 안 있어 신태영이 의금부 옥에 갇힌다. 의금부는 전처의 아들 유언명이 계모인 자신을 어머니로서 섬기지 않고 마침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요지의 보고를 한다. 이제 불길은 유언명에게 번진다. 그런데 이때, 유정기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이 벌어진다. 유정기는 이혼소송과 관련, 친척의 신문 내용을 몰래 바뀌치기하려다 발각된 것. 유정기는 체포 구금된다. 유정기의 이런 행동은 자신이 이제까지 한 말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의금부에선 대신들 의견을 수렴해 숙종에게 보고했다. 영의정 신완과 우의정 이유 의견이 명확했다. 더욱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숙종은 그들의 말을 따라 더 조사해 옳고 그름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신태영은 옥에서 해를 넘겼고 이혼은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사건은 지속됐지만 이혼은 불가했던 것이다.

이때 신태영의 수천마디의 공초(주장)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게 남편 유정기의 ‘잠자리 매너’다. ‘남편이 행검이 없다고 해 (공초를) 보는 사람들이 해괴하게 여겼다’는 숙종실록 사관의 평이 있다. 행검(行檢)은 품행이 없다는 뜻으로 신태영은 지아비의 독특한 성적 취향을 언급했으니, 이는 남편 유정기에게 망신을 줌으로써 기를 꺾고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흥미진진한 숙종 때 법정 드라마, 기자는 스포일러가 아니기에 결말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저자의 맺음말에 주목하자. 어쩌면 저자는 이 말을 하려고 좁쌀만한 사료를 뒤져 멋진 드라마를 쓴 것 아닐까. ‘남성-사족의 가부장제는 여성을 삼켰으나 여성은 가시가 되어 목에 박혔다. 더 깊이 삼킬 수도 없고, 쉽게 뱉을 수도 없었다. 남성에게도 그것은 불행이었다.’저자같은 학자가 있어 이런 ‘드라마’를 지금에라도 보니 이는 행운 아닌가.

■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4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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