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주인의 요강을 깨끗하게 닦는 정성을 보여라”
[황태영 칼럼] “주인의 요강을 깨끗하게 닦는 정성을 보여라”
  • 독서신문
  • 승인 2016.04.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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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향기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조만식선생에 대한 감동적 일화가 많이 회자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평안북도 정주에 머슴살이를 하던 청년이 있었다. 눈에는 총기가 있고 동작이 빠르고 총명한 청년이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그는 아침이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려 다시 안방에 들여놓았다. 주인은 이 청년을 머슴으로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그 청년을 평양의 숭실대학에 입학시켰다. 공부를 마친 청년은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요강을 씻어 숭실대학에 간 그가 민족의 독립운동가 바로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1883~1950) 선생이다. 후에 사람들이 물었다. “머슴이 어떻게 대학에 가고 선생님이 되고 독립운동가가 되었습니까?” 선생이 답하셨다. “주인의 요강을 깨끗하게 닦는 정성을 보여라.” 남의 요강을 닦는 겸손과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아량 그리고 지극정성 그게 바로 조만식 선생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는 조만식선생께서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었고 15세 때부터 평양에서 포목상과 지물상을 경영한 점으로 보아 비슷한 삶을 사셨던 이승훈선생의 일화를 착각해 기술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이승훈선생께서는 요강 닦는 성실성으로 삶의 궤적을 바꾸셨다. 선생은 가난한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6살 때 고향인 정주를 떠나 납청정으로 이사해 그 곳의 이름난 유기상인 임권일상점의 사환이 되었다. 선생은 아침저녁으로 주인영감이 뱉어내는 가래침 요강을 밥그릇보다 더 정성들여 깨끗하게 씻었다. 어른들도 요강을 치울 때는 대강 물로 씻어만 내는데 선생은 냄새가 안 나게 새 요강을 만들어서 갔다 두었다. 주인은 어린 선생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선생은 외교원겸 수금원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선생은 성실성과 정직성이 널리 알려져 15세의 어린 나이로 놋수저 행상으로 창업을 할 수가 있었고 훗날 오산학교 교장, 동아일보사 사장을 역임하실 수 있었다.

이승훈선생의 어린 시절 요강 닦던 지극 정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선생은 유기제조 및 유통, 운송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동학 농민군 진압을 명분으로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선생의 사업장은 잿더미가 되었다. 거리도 초토화되어 거지가 즐비했고 도적떼들이 사방에서 날뛰었다. 하소연 할 데도 없었고 통곡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뼈아프고 이가 갈리는 서러움이었지만 선생은 좌절하지 않았다. 선생은 남은 장비의 잔존가치를 다시 계산하고 부채 갚을 계획서를 작성하여 철산의 거부 오삭주를 찾아갔다. 전란으로 망한 대부분의 공장주들은 부채를 갚지 않고 도망가 버렸지만 선생은 돈 떼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31세 청년 사업가의 성실성과 정직성에 감동받은 오삭주는 남은 부채를 모두 탕감해주고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전액 빌려주었다. 마침내 선생은 수입품인 석유와 양약의 총판대리점을 맡았고 종이, 도자기, 면포 등 모든 일용잡화의 전국 유통권도 확보했다. 선생의 상점을 거치지 않는 물품은 조선 땅에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선생은 30대에 지금으로 치면 아무리 적게 평가해도 10조원 이상의 가치가 되는 조선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랐다.

요강을 닦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현대투자신탁에 근무할 적에 강창희대표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이 1975년 일본 동경증권거래소에서 파견돼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곳 지하에서 70대 노인 100여명이 둘러 앉아 주식과 채권을 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는 그들이 이전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 월급은 얼마나 받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들 가운데는 공무원으로 치면 차관, 국장에서 기업체 사장출신까지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단순 반복적인 일이고 시간당 임금도 5,000원 정도에 불과한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존경은 ‘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어떤 일을 하건 보람 있게 일하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는 길은 요강 닦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것 속에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것에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큰 구호 큰일만 하려하지 말고 작은 것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성심을 다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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