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23)] “음악시험에서조차 멜로디 변화를 글로 쓰게 할 정도로 글쓰기 중시”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23)] “음악시험에서조차 멜로디 변화를 글로 쓰게 할 정도로 글쓰기 중시”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4.1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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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독일 함부르크 프리드리히 에버르트 김나지움의 리사 스타로섹 민들레 양 인터뷰
▲ 민들레 양(가운데)과 아빠 우베 스타로섹 함부르크공대 토목공학과 학장. 왼쪽은 민들레의 둘째 오빠인 승룡 네오 스타로섹.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리듬이 괜찮긴 하지만 케이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케이팝을 들으면 신나긴 하는데 가사를 보면 좋은 의미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독일 함부르크의 프리드리히 에버르트 김나지움 11학년에 재학 중인 리사 스타로섹 민들레 양(15)은 케이팝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고 “오래 듣기에는 내용이 별로 없다”고 밝혔다. 무작정 대중문화에 열광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학생으로 느껴졌다.

‘새천년둥이(2000년생)’인 민들레 양은 충청남도가 고향인 한국인 어머니 방미석 씨(50)와 독일인 아버지 우베 스타로섹 씨(함부르크공대 토목공학과 학장․60) 사이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한국 외할아버지의 손주 18명 중에서도 가장 막내다.

“영화배우 하지원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적에 ‘황진이’ 드라마를 본 게 기억나요. 황진이가 입는 한복을 외할아버지랑 엄마가 사 주셔서 입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민들레 양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뒤 이달 19일에도 이메일로 추가 취재를 했다. 인터뷰 내용은 독일 김나지움의 글쓰기 교육과 학교생활에 관한 것이다. 교사나 학부모 시각이 아니라 고교생 관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았다.

◆ “한국 중학교에도 다녀봤지만 토론과 대화 시간이 너무 부족”

“한국의 중학교에도 잠시 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빠가 서울대 교환교수로 계시던) 2년 반 전에 서울 관악구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중2 과정을 6개월가량 거쳤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토론이나 대화식 수업이 아니라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민들레 양은 “한국 중학교에서는 독일에서보다 공부를 더 많이 시켜 학업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한국의 수업 방식은 독일과 많이 다른 데다 친구들과 놀 시간도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다.

민들레 양은 “독일에서는 선생님께서 반드시 계획을 세워서 글을 쓰게 한다”면서 “어떻게 글을 전개할 것인지 미리 구성을 잡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처음과 중간과 끝부분에 무엇을 담을지 글의 뼈대를 만든 다음에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을 넣을 것인지 계획을 짜게 한다는 뜻이다.

▲ 민들레 양이 학교 음악반 친구들과 함께 교외 음악 캠프에 참가해 오케스트라 연습을 한 뒤 단체 촬영을 하고 있다.

◆ “똑같은 것 말고 좀 더 다른 것을 창의적으로 써 보라고 독려”

민들레 양은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교사들이 지도해 준다는 점도 설명해줬다. “너무 똑같거나 비슷한 글보다는 좀 더 새로운 내용과 표현을 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제시문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지 말고 새로운 어휘와 문장으로 재가공해 표현하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제시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글은 좋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민들레 양은 “독일어 시험문제는 제시문을 준 뒤 요약하고 비교하는 방식으로 나온다”면서 “제시문에 담긴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곁들여 자기 생각을 적게 한다”고 밝혔다. 특히 자신이 제시하는 논거가 설득력이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써야 한다고 했다.

최근의 시험문제도 예로 들면서 시험방식을 설명했다. 제시문 독해력과 문장 표현력을 모두 갖춰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정치학이란 과목이 있습니다. 정치학 교재에는 ‘CCTV를 설치해 놓으니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내용과 함께 독일의 법률과 제도를 소개한 부분이 있습니다. 시험 문제에서는 ‘사람들이 CCTV를 싫어하는 이유를 책에서 찾아낸 뒤, 그것을 논거로 해 자신의 논리를 새롭게 펼쳐보라’는 식입니다.”

◆ “역사 시험은 동영상 곁들인 논제 주고 글 쓰는 문제 출제”

민들레 양은 “음악 시간에는 국어 시간처럼 요약을 하게 하는 문제를 낸다”면서 “악보를 받은 뒤 음악을 듣고 음악이 어떤 멜로디로 흘러가고 변화하는지 요약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이런 시험 문제는 소감을 적는 방식은 아니고 처음과 중간과 끝으로 나눠 음악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멜로디에 변화가 있으면 어떻게 변화하는지 쓰게 하는 식이다. 바하 음악을 들려주면서 이 노래는 어떤 방식으로 작곡했는지를 묻기도 한다.

미술, 역사, 수학 시험도 각각 글쓰기와 연결지을 수 있다. 미술 시험에서는 글쓰기가 많지 않은 대신 그림을 그리고 왜 그것을 그렸는지 설명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 역사 시험에서는 CCTV 동영상을 곁들인 논제를 준 뒤 글로 답하는 형식을 취한다. 민들레 양은 “수학 문제도 그냥 답만 달랑 적어내는 게 아니라 풀이과정을 문장으로 적어가면서 답안을 완성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민들레 양이 19일(한국시간)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는 소설 ‘The fixed period’의 제시문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문제였다. 민들레 양의 어머니 방미석 씨는 “이번 과제는 영어 소설 지문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라면서 “민들레가 숙제하는 데 무척 집중하고, 즐기는 것 같다”고 살짝 귀띔했다. 방 씨는 또 “그 장면을 신문에 싣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더니 민들레가 ‘왜 엄마는 공부를 방해하냐’면서 엄마를 혼내줬다”며 활짝 웃었다.

▲ 민들레 양이 19일(한국시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숙제를 하는 모습. 소설 제시문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과제다.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이날 과제를 마친 민들레 양은 글쓰기가 무척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소통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제가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글쓰기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대입 시험에서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글쓰기가 많이 필요하다고요.”

민들레 양은 평일에는 6시 45분에 일어난다. 부엌에 내려와 밥을 먹고 양치질과 세수를 한 뒤 옷을 차려입는다. 보통 7시 30분에 학교로 출발하고,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한다. “수업은 오전 8시에 시작하고 낮 2시나 오후 4시에 끝납니다. 학교를 마치고 난 뒤에는 놀러 가거나 집으로 갑니다. 집에 가면 먼저 숙제를 하고 밥을 먹고 바이올린을 켜고 친구들을 만납니다. 저녁엔 가족과 함께 지냅니다. 다음날 등교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듭니다.”

◆ “한국과 달리 독일에선 손들고 발표하는 활동 많아“

민들레 양이 다니는 프리드리히 에버르트 김나지움에서는 45분짜리 수업을 하루에 6~7시간이나 9시간 정도 진행한다. 독일어와 수학, 영어를 가장 중요하게 교육한다. 과학과 체육, 미술, 음악, 종교, 철학, 스페인어, 라틴어 시간도 있다. 11학년에 올라가면 일주일에 모두 36시간을 수업받는다.

“한국에서는 그냥 선생님 말씀을 듣는 방식으로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선생님이 준 문제를 풀고 손들고 발표를 합니다. 수업에 적극 참여를 하면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구술발표 60%, 필기시험 40%를 반영합니다. 수업에 집중해서 참가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책을 읽고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민들레 양은 “쉴러의 작품을 공부한다고 하면 반드시 미리 책을 미리 읽어가야 한다”면서 “그래야 공부도 하고 토론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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