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로…장수라는 악몽 ‘노후파산’
[서평]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로…장수라는 악몽 ‘노후파산’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4.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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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일본인 고령자 200만명이 생활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금만으로 홀로 근근이 살아간다. 이들은 만약 병에 걸리거나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때가 닥치면 생활은 파탄을 맞게 된다. 일본 NHK는 이를 ‘노후파산’이라고 불렀다. 2014년 9월 ‘노인표류사회- 노후파산의 현실’이 방영되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게 일본만의 일인가. 최근 국내 한 발표는 ‘노후파산’이 결코 이웃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파산자 4명 중 1명이 60대 이상이라는 발표다. 한쪽에선 청년실업이 노후파산으로 이어진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기도 한다.

 
NHK 다큐를 따라 가보자. 일본은 1990년대에는 현역 세대 5.1명이 고령자 한명을 부양했지만 2010년에는 2.6명, 2030년에는 1.7명으로 거의 현역 세대 한명이 고령자 한명을 부양하는 구조에 가까워지고 있다. 노후파산에 처한 고령자를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발을 내디딜 것인가.

“연금만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끼만 먹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1000원을 쓸 여력이 없다오” 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고령자들이 현대 일본 사회에서 직면한 현실이다. NHK 제작팀은 그 배경으로 거의 20년째 지속되고 있는 세대 당 수입 감소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하는 세대 수입이 줄어들고 고령자 연금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100만원의 연금 수입이 있으면 건강한 동안에는 독신생활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한 병에 걸리거나 부상으로 입원한다거나 하는 상황에 몰리면 바로 파산할 수밖에 없다.

한 40대 남성은 말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연금 미납자이다. 결혼도 못한 나에게 찾아올 미래는 노후파산뿐이다. 솔직히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시부모를 모시고 있는 50대 전업주부는 “나는 아이가 없다. 노인 복지시설에 들어갈 돈도 모으지 못했다. 결국 집에서 외롭게 죽어야하는 걸까” 이처럼 노후를 맞이할 40, 50대의 불안감이 집중 노출됐다.

 
어떤 노인은 연금으로 월 100만원을 받는다. 국민연금 65만원에 회사원 시절 적립한 후생연금을 합친 것이다. 독거 고령자치곤 중간 이상 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집세 60만원 내면 40만원 남는다. 공공요금과 보험료 등을 내면 수중에 남는 건 20만원 뿐. 이게 한 달 생활비다. 식비는 하루 5천원을 넘길 수 없다.

그에게 연금이 나오는 날, 딱 하루, 근처 대학 구내식당에서 4천원 짜리 점심 정식을 먹는 게 유일하게 허락된 사치다. 전기도 요금이 연체돼 끊겼다. 최소 월 5만원 나가는 돈이다. TV를 못 봐 라디오로 대신하고 세탁기를 못 돌려 손빨래를 한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했는데 설마 이런 노후를 맞을 줄 몰랐다고 말한다.

또 다른 연금생활 독거노인. 오직 국민연금에 의지해 살면서 젊어 저축했던 예금을 조금씩 헐어 생계비를 보충한다. 예금이 줄어드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병원도 안 간다.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니. 허무하다”고 말한다. 금전적으로 쪼들리지만 형제에게 기대지 않는다. 그런 폐를 끼치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노인도 많다.

보행기에 의지해야 하는 또 다른 독거노인. 도우미가 찾아와 봉사하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도우미가 최대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세탁기를 자신이 돌려야 한다. 그래야 도우미는 세탁물을 널고 화장실 청소 등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인은 보행기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한 손으로 세탁물을 집어 세탁기에 넣어야 한다. 몸의 균형 잡기가 힘겹다. 더 힘든 일은 세탁기에 세제를 넣는 일. 류머티즘으로 손아귀 힘이 없어 액체세제 뚜껑을 돌리기 힘들다. 세제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겨우 돌린다. 그러나 부들부들 떨면서 세제 투입구에 액체세제를 넣으려 하지만, 부들부들 떨 때마다 세제가 바닥에 떨어진다. 세탁기가 겨우 돌아갈 무렵, 그는 땀에 흠뻑 젖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노후는 돈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럴 정도 여유 있는 고령자는 매우 적다. 그게 현실이다. 또 하나 노후파산의 공포는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는 데 있다. 대부분 고령자는 단번에 파산하는 게 아니다. 생활고에 빠져 집을 팔거나 예금을 조금씩 헐어 쓴 끝에 파산에 몰리게 됐다. 그리고 자영업이나 농업에 종사한 까닭에 후생연금 없이 국민연금에만 의존한다면 노후는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노후파산 예비군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일하는 세대가 40~50이 돼 수입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으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부모 연금 밖에 없다. 노후파산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역자 김정환은 번역하면서 수없이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고 한다. 번역 의욕이 나지 않고 노후파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누구에게나 찾아 올 미래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울하지만 비켜갈 수 없는 현실. 바로 우리 얘기다. 또 젊은 세대 얘기이기도 하다.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316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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