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동맹체제로 이루어진 도시국가였다. 단일국가가 아니었기에 유사성이 크지 않았다. 민족, 종교, 언어, 삶의 방식 등 모든 것이 다 달랐다. 로마제국을 결속시켜줄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니발은 로마가 전투에서 패하면 동맹국들이 이탈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몇 차례의 전투에서 로마는 크게 패하고 멸망 위기까지 갔지만 동맹국들의 이탈은 없었다.
‘로마시민권’이라는 포용력 때문이었다. 로마는 연합국에 대해 관대한 통치를 했다. 인종이나 종족에 상관없이 능력과 실적에 따라 얼마든지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로마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리게 해 주었다. 그래서 동맹국가들은 로마의 전투는 곧 자신들의 전투라고 생각했고 로마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로마의 통 큰 포용이 결국 승리의 초석이 되었고 강대국의 발판이 되었다. 반면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를 이끈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편입된 도시국가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이류시민으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배타적 선민의식은 결국 도시국가들의 결속과 전투력을 약화시켰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쇠퇴와 로마제국의 번성에는 물과 불의 배척과 솥의 포용이라는 숨겨진 속내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던 원나라의 최고 전성기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5대 황제 쿠빌라이 때이다. 그는 몽골족의 특성인 힘과 공포 대신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현군이었다. 쿠빌라이는 전쟁을 해도 필요 이상의 살상은 피했다. 다른 민족, 다른 종교를 차별하지도 않았다. 통치에 도움이 된다면 출신도 따지지 않고 중용했다. 모든 관리들에게 정책 제안서를 올리게 했는데 그 제안서가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처벌하지 않았고 채택되면 포상을 했다.그의 옆에는 몽골인, 색목인, 중국인, 위구르족, 티베트인 등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쿠빌라이의 관용에 대한 일화가 있다. 당시 정복당한 국가의 황제는 목에 끈을 걸고 전승국 황제를 알현했다. ‘내 목숨은 이제부터 당신 것이다.’는 치욕적인 항복의식이었다. 남송을 무너뜨리고 쿠빌라이는 연회를 베풀었다. 남송의 마지막 황제 공종과 그의 모후, 후궁들이 참석했다. 어린 공종의 목에 끈을 걸려는 순간 모후는 흐느껴 울었다. 쿠빌라이의 황후 차비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쿠빌라이가 황후에게 왜 표정이 어두운지를 물었다. 황후가 답했다. “천년을 존재하는 왕조는 없었습니다. 우리도 멸망하게 된다면 우리 후손의 목에도 끈이 매달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쿠빌라이는 황후의 말을 듣고 공종의 항복 의례를 취소시켰다. 공종의 모후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훗날 한족 출신의 역사가들이 원나라 왕조에서 유일하게 쿠빌라이만을 칭송하는 것도 이 같은 포용과 배려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물과 불의 다툼이 아니라 솥의 조화가 세상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든다. 지역, 이념의 극악한 소모적 싸움은 중지되어져야 한다. 조화와 포용으로 오미를 살려가야 한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스탠턴은 평소 ‘고릴라’, ‘바보’, ‘깡마른 무식한 촌놈’ 등으로 링컨을 경멸하던 정적이었다. 참모들은 충격을 받았고 실수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링컨이 답했다. “그는 더 이상 나의 적이 아닙니다. 나는 적이 없어져서 이득이 되었지만 그는 적을 도와주어야 하니 그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스탠턴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그의 죽음을 가장 애통해했다. 정적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의 뜨거움도 물의 냉정함도 아니다. 솥의 화합과 포용만이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움직인다. 강대국이 되고 명군주가 되려면 솥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