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준에 인격을 추가시켜 봄이 어떨까? 자고로 인격을 척도하는 방법으로 신·언·서·판을 꼽는 경우가 있었다. 신(身)은 육체를, 언(言)은 말 즉 언변을, 서(書)는 교양 즉 지식을, 판(判)은 사물을 올바로 바라보며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미인이 되려면 이 4가지 조건 중 3개의 조건은 갖추어야 되지 않겠는가.
봄의 계절이다. 만상(萬象)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건너편 산에는 진달래 꽃불이 붙고, 앞뒤 동산은 개나리 잔치를 차렸다. 이때 어느 골목에서 일이다. 계절에 걸맞게 화려하게 차려 입은 첫눈에도 지성과 교양이 넘쳐 보이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저만치 비탈길에선 허리 굽은 할머니가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가 힘에 부치는지 자꾸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젊은 부부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곁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중년의 어느 아주머니가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운지 한걸음에 달려가 손수레를 뒤에서 힘껏 밀어준다.
내 눈에만 그런 것일까? 종전의 젊은 부부에게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과 함께 인간적인 가슴을 잃은 속이 텅텅 빈 미인의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준 옷차림이 수수한 아주머니는 속이 알찬 범부의 모습으로 비쳐져 마음이 흐뭇하였다.
나에겐 2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지인이 있다. 그녀는 검소하게 차려 입고, 행동도 신중하다. 그의 집에는 값진 골동품도 사치스런 가구도 없다. 대신 많은 책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개권유익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많은 책을 눈요기만 해도 지식을 건네받는 듯했는데, 주인은 책을 펼쳐 읽었을 터이니 얼마나 많은 지식이 쌓였을까? 그날 이후 나의 미적 감상법이 달라졌다. 역시 내면적 미가 외형적 미를 압도한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이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의 지인이 있다. 그는 내 집을 찾아온 이들에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그녀를 엊그제 만났다. 고추장을 담갔다며 항아리에 담아 준다. 이렇듯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씀씀이를 지닌 그녀는 십 여 년 전 남편을 지병으로 잃고, 자식들에게 의지하며 사는 처지다. 그때의 충격으로 와사풍까지 얻어 후유증으로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기쁜 일이 있어도 마음껏 웃지도 못한다. 그녀는 가슴으로 웃는 여인이다. 자신만 웃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웃게 만든다. 자신도 힘겹게 살면서 늘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고통을 함께 나눈다.
많은 사람들이 익혀 아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의 저서『세로토닌 하라』를 정독했다. 「전두엽을 주목하라」는 제목 글이 매력적이었다. ‘전두엽은 인간이 인간 일수 있게 하는 중추다. 특히 전두엽 앞 쪽에 위치한 전두전야가 양심, 윤리, 규범, 희생 등 인간 지고의 중추역할을 한다.’ 라고 한 부분이다. 현대인의 병든 정신세계를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다.
흑백논리가 덕목의 주체가 되고 도의와 예의가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기심의 팽배로 배려와 타협이 사라진 사회가 되었다. 이 모두가 전두엽 미숙아 행태가 아닌가 싶다.
이시형 박사는『세로토닌 하라』에서 진정한 인생 성공은 얼마나 성숙한 전두엽을 지녔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다고 했다. 고령이 되면 뇌 전체는 6퍼센트 위축되지만 관리 잘못하면 29퍼센트까지 위축된다고 한다. 후자가 되면 진짜 노인이 된단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이다. 뇌가 노화되면 몸도 늙는다는 게 정신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뇌의 노화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사소한 일에도 감동해야 한단다. 그러려면 먼저 남에게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입으로 웃는 일도 좋지만 가슴으로 웃을 수 있을 때 심신이 젊어진다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