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여성차별이 ‘옛날이야기’라고? 천만에 현재진행형!
[서평] 여성차별이 ‘옛날이야기’라고? 천만에 현재진행형!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3.25 17: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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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20년 전 어느 대학 구내식당의 아침. 일찍 등교한 학생들이 구내식당 문도 열기 전에 길게 줄을 섰다. 배식 시간이 돼 나타난 흰 모자를 쓴 배식담당 아주머니는 맨 앞에 있는 여학생이 아니라, 몇 명이나 뒤에 서 있는 남학생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맨 앞의 여학생은 황당해하며 항의했다. “제가 먼저 왔어요. 왜 새치기를 하게 하시는 거죠?” 그러자 아주머니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남자가 먼저 시작해야지, 어디 여자가 먼저. 그럼 재수 없어. 남자 꼭지가 우선 끊어야 하는 거지” 남학생은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밥을 받아 갔고 여학생은 무기력했다.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당시 줄을 선 학생 모두 침묵했다.

 
『어서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책을 기획한 조선우가 머리말에서 하는 말이다. 떠들어봤자 분란만 일으키지 무슨 실속이 있겠나 하는 생각이었고 자신한테는 손해가 없으니 됐다라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옛날, 옛날에 동양여성들은 이렇게 살았다네’ 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부피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여성에 대한 소개는 매우 허약하다. 1908년에 나온 책이니 한국여성의 눈부신 권리신장을 목도할 시간이 없었다해도 너무 인색하다. 고작 9쪽이다. 책 전체의 70분의1이고 중국이나 일본여성 설명보다도 훨씬 적다. 조선은 주로 일본의 영향권 하에 놓여있는 상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역자나 기획자 측에서 편집자주 등을 통해 책의 서술 시점을 다시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선 여성들에겐 법적 지위가 거의 없지만 겉으로는 남자들에게 존중을 받는다.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거리에서 여성을 만나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서기도 하고 , 여성에게는 가장 정중한 어조로 말한다. 아이들은 어머니도 공경하도록 배운다. 한편으로 법도가 너무 엄격해 모르는 이가 손끝으로 여자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딸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죽이기도 하며,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외도 있다. 영국 외교관의 저서에 따르면 한 아내가 남편을 대신해 남자 스무명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저자는 침례교 목사로 성서문학을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때문인지 책 앞의 상당부분 내용은 성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34쪽을 보자. ‘사건 뒤에는 여자가 있다’라는 프랑스 속담은 어떤 형태로는 태초부터 인간의 입에 오르내렸던 내용이었다. ‘당신이 제게 주신 여자’라는 구절은 아담이 자신의 잘못을 교묘하게 ‘주신 자’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비루하게 사죄하는 표현이다.

역사를 배우는 의미는 과거를 알아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미래의 열쇠로 삼는 것. 그런 점에서 히브리는 과부나 아버지가 없는 자식을 어떻게 배려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상거래를 할 때도 과부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조심했다. 결코 과부들의 의복을 저당 잡히지 않았으며, 판관들은 과부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 여성들의 열등한 위치는 그 대단했던 나라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한 가지 원인이었다. 로마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들에 대한 모독은 로마 권력의 하락을 부채질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의 아내와 미망인들을 보호하던 문화는 이스라엘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었다 ”

이 책은 기획자 조선우의 말처럼 동양여성에 대한 옛날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일화나 전설 등 옛날이야기처럼 서술돼 있어 지루하지 않고 나름대로 흥미로운 대목도 꽤 있다. 내용이 무겁지 않은게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을 쓴지 오래돼 다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있지만 여성차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아직도 우리 삶의 미세한 틈으로 교묘히 흐르는 남녀차별은 큰 강을 이루어 여성들의 인생에 굴곡을 드리우고 있다(조선우). 여성차별,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우리는 보고 있고 알고 있다. 그러나 고치려고 나서는 이는 드물다. 정작 여성차별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 어서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E.B. 폴라드 지음 | 이미경 옮김 | 책읽는귀족 펴냄 | 616쪽 |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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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버튼 2016-03-26 10:01:44
여성이 주례하면 안되나요? 사람들의 생각을 트라이버튼 ( TriButton ) 에서 알아 보세요.
www.tributton.com/index.jsp?uc=1&fc=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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