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아름다운 손수건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아름다운 손수건
  • 독서신문
  • 승인 2016.03.1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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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집 『별빛 닮은 세월』을 읽고

▲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마음이 순연하고 순박했었다. 복식사(服飾史)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이 즐겨 입던 흰옷은 우리 민족의 순결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생리적으로 흰옷을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는 태양의 성격 즉 색상(色像)을 이상으로 삼아 흰빛을 생활 속에 살린 데서 연유한다고 보는 것이다.
같은 태양을 숭배하는 일본은 붉은 태양을 그려 국기로 삼았다. 그리고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에서 표의 문자인 한자(漢字)를 빌어 일본(日本)이라 국호를 쓰고 있다. 백의(白衣)의 우리 풍속에선 ‘조상숭배’와 ‘조상영혼’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상을 당하면 상주는 물론이고 친척도 흰옷인 소복(素服)을 입었다. 무속에서의 흰옷은 밝음과,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함으로 영원불멸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흰색은 순결을 의미한다.

순결은 순수로 유추된다. 우리국민의 심성은 순수와 순결이 그 바탕이라는 뜻이다. 조상들은 평생 흰옷을 즐겨 입으며 하늘의 마음을 닮으려 애썼다. 조상들은 흰 옷을 공수래공수거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도 여겼다.

산업 사회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로 우리네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물질주의 만능으로 이기심이 팽배하여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세태의 생활 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기성세대다. 참으로 재미없는 세상을 살고 있기에 진부한 이야기를 나열해 봤다.

며칠 전 일이다. 노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곱상하게 생긴 노점상 여인 인상이 참 좋았다. 그때였다. 차도 저만큼서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던 한 남자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노점상 앞으로 다가서더니 느닷없이 노점 물건들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의 무자비한 발길에 노점에 진열된 물건들이 여기저기 나뒹굴며 훼손되어 상품 가치를 잃고 있었다. 자신이 맡아놓은 자리서 허락 없이 노점을 벌였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순간 남자의 손수레가 기우뚱하더니 그 위에 앉아있던 예닐곱 살 된 사내아이가 길바닥으로 떨어져 얼굴을 크게 다쳤다. 그러자 노점상 여인은 남자의 횡포에 아무런 대거리도 않고, 쏜살같이 달려가 상처 난 아이 얼굴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실로 연극 속의 이야기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인이 아이 얼굴을 닦아줄 때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 손이 조막손이었다.

여인의 그 조막손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은 천근으로 내려앉았다. 과연 내가 이 경우를 당한다면 저 아이를 어떻게 했을까? 그 아이를 껴안아줄 자신이 없을 것 같다. 남자의 행패에 아랑곳없이 아이를 껴안고 보듬어 주는 저 심성이 백의(白衣)를 사랑하는 순수인가 아니면 생리적인 모성애인가?

나는 나의 두 손을 확인해 봤다. 내 손에는 내가 사려던 물건이 들려 있었다. 내 손은 저 여인의 손처럼 남의 고통을, 흘리는 눈물을 진정으로 어루만져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 내 손이 부끄러웠다.

임경자의 수필집 『별빛 닮은 세월』속에「손」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그는 이 수필의 글머리에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상대방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손’이 참으로 위대한 손이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맨 먼저 엄마의 가슴에 올려놓는 게 손이라고 했다. 그 손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태내에서 배웠기 때문이란다.

임경자의 수필 ‘손’처럼 노점상인의 손을 통하여 새삼 인간적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은 참으로 따뜻했다. 장애를 지닌 손이었지만 멀쩡한 두 손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나는 백의민족의 참 모습을 보았기에 잠시나마 마음이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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