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자] 치매…죽음…그리고 내면의 '거지들' - 의사 김진국 『기억의 병』
[이 저자] 치매…죽음…그리고 내면의 '거지들' - 의사 김진국 『기억의 병』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3.11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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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잘 못 다룬다고 천대 받는 노인들, 젊은이 당신들은 안 늙나"

[정리=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치매라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현실이 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치매로 의심되는 증상은 의외로 많다. 특히 시골 어르신들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문지를 들이대고 판단을 내린다. 그 어르신들이 자라난 환경, 문화, 관습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스마트폰 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도 치매환자 취급 당한다. 그리고 죽음은 또 얼마나 천대받는가. 산업화의 그늘이라고 하기엔 너무 당면한 문제고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임은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요양병원 의사가 치매와 죽음에 대한 사회문화적 비판서를 냈다. 보고 겪은 것뿐아니라 처방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책 『기억의 병』은 그래서 일반인은 물론 의사, 보건 당국자 등이 꼭 봐야 할 것이다. 저자 김진국 의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태어난 곳 성장한 지역, 대학 및 전공 등을 이력서 쓰듯 설명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대학, 대학원에다 수련의 과정, 그 이후 의사 생활도 대구에서만 한 대구 토박이입니다. 대구 인근에 붙어 있는 경산에서 한 4~5년 의사생할을 하긴 했으나 경산을 경상북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경산과 대구는 한묶음입니다. 전화 지역번호도 053 같이 씁니다. 전문의 과정은 ‘신경과’를 선택했고,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가 되기 전부터 신경과의 환자군이 주로 노인층이다보니 다른 전공의보다는 자연스럽게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김진국 의사
- 현재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노인요양병원의 의사이니까요. 주로 장기입원요양이 필요한 노인환자들을 보살피는 일이지요.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몇 해전에 『나이듦의 길』이라는 책는데 이 책은 노인 문제 전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책을 내놓고 난 뒤에 지금 온 세상이 걱정하고 있는 '치매'라는 한 주제에 국한해서 좀 생각을 해보자는 뜻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공사(公私), 안팎으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좀 있기도 했는데, 그런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쉽게 넘어가게 만드는 것이 또 '글 쓰는 것이더라' 라는 경험도 있고 해서….

- 늘 죽음을 목도해야하는 직업이군요. 죽음도 삶의 일부겠죠? 죽음을 정의한다면

의사에게 죽음을 정의하라고 하시면…. 너무나 간단명료하고 명쾌하지요.
죽음이란 '동공반사가 없고, 심박동이 없어 심전도 그래프가 수평으로 이어지고, 자발호흡이 없으면' 의사는 죽음이라고 선언합니다. 물론 심장도 뛰고 호흡도 있으나 뇌파에서 그래프가 수평으로 이어지면 '뇌사'라고 하지요. 죽음을 의과학으로 설명하면 이렇게 간단 명료 명쾌하지만 무미건조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의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겠지요. 있습니다. 그래서 장례도 치르고, 제사도 지내고, 추모도 하고, 무덤도 만들고….또 그래서 종교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죽음을 통해서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문화예술이 생겨난 것이고….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의과학으로 설명하는 무미건조한 기계적인 ‘죽음’이외에 죽음을 설명하는 다른 목소리들이 굉장히 약합니다.

문화-문학이나 예술-나 종교가 죽음을 설명하고 죽음을 살피고, 죽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문화나 종교가 지금 힘도 없는데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죽음이 아주 천대받고 천한 죽음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화나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 집에 가겠다고 보따리를 다 싸놓고 잠이 든 할머니. 잠결에 행여 전화오는 소리를 놓칠까봐 손에 전화를 꼭 쥐고 잠이 들었다. 그날, 그 이튿날, 그 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날에도….할머니의 손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 치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무지하고, 사회적 배려는 조금도 없고, 의사 진단도 명쾌하지 않고 가족도 천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픕니다. 의사 입장에선 어떻습니까. 치매는 이렇다, 그러니 이렇게 대처해라 하는 말씀을

치매 예방법은 인터넷이나 노인과 관련된 의료기관이나 공공기관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시면 쏟아집니다. 거기다 제가 덧붙일 만한 내공은 없습니다. 오히려 치매에 대한 과잉반응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고, 언론매체가 이를 부채질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 치매 환자 진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 잘못인가, 환자 가족의 무언의 압력인가

의사는 서양문화에 뿌리를 둔 이성적 사고를 하도록 교육받은 사람입니다. 흔히 ‘과학적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환자는 절대 ‘과학적 사고’를 할 수가 없고,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초고령층, 70~80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성적 사고를 하거나 과학적 언어를 사용하도록 교육받은 적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말은 배워서 정제된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체득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말보다는 행동이 더 익숙한 사람입니다. 한 평생 농사만 지어오던 사람이 말로 농사를 지었겠습니까? 그런데 뭔가 자꾸 실수를 되풀이하는 노인을 병원에 데려다 놓고서 이성적 사고를 하는 의사가 ,과학적이거나 이성적 언어로 질문을 하는 겁니다.

‘과학적 사고’나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는 노인환자의 반응과 대답에 그 의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노인환자들은, 아니 그보다 더 젊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병원에 와서 치매검사를 받더라도 아마 대부분 경도치매나 치매초기 진단을 받게 될 겁니다. 진단법이 엉터리라기보다는 의사의 정서, 문화, 사고체계와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들의 정서, 문화, 사고체계가 달라서 생기는 엇박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진단법이 문제라는 겁니다. 진단 자체가 엉터리라기보다는.

- 현실적으로 ‘수용’이 유일한 대안인가

지금 정부의 대책이 그렇지요. 그나마 수용시설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 며느리가 치매라고 확신해 병원에 끌려온 할머니. 화장실 물을 안내리는데 이게 치매가 아니고 뭐냐는 며느리 주장에 할머니는 들어갈 때 내리고 나올 때 내리고, 물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나라고 항변한다. 배설물로 퇴비까지 만들어 쓰던 기억의 할머니를 아들 며느리 손주는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면 치매인가라는 주장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 치매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이 신선하고 또한 매우 타당하다고 본다. 특히 정보화시대의 노인 문제 접근은 치매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정보화 시대, 노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면 사회적인 무슨 장치가 있어야 하나.

별 대책은 없다고 봅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빨리 바뀌는 이유가 소비자들의 요구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인가? 그건 아닌 것 같고요. 순전히 기업의 이윤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이익 창출에 목을 매고 있는 기업이 노인들을 배려한 경영 전략을 세우지는 않겠지요.

어차피 그들은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이니까..끝갈 데까지 가서야 반전이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그 끝이 어딘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자연의 질서가 있으니까.반전이 일어나리라 믿는 거지요.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백치'들이 대량생산되겠지요. 우리 세대 역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새로운 제품에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여 '옛날만 기억하는 낯선 손님' 신세가 되어 쪽방이나 먹방, 옥탑방에서, 또는 형편이 조금 나으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의 침상에서 쉽게 찾아오지 않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노인을 마치 벌레 보는듯한 분위기도 분명히 있다. 사회 탓이고 세태 탓인가. 의사로서 다른 원인도 찾을 수 있나.

힘을 곧 정의라고 생각하고, 그 중에서도 돈의 힘을 신처럼 숭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생긴 혐오와 멸시의 문화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힘이란 게, 한국사회에서 ‘힘’이란 게 대개 정통성이나 정당성도 없고 최소한의 권위도 없는 힘 아니겠습니까? 그런 힘을 정의라고 믿게 된 세상인데…뭐…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은 주권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지요. 하지만 그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칼 야스퍼스가 히틀러를 뽑은 독일 국민의 책임을 거론한 적이 있지요. 그는 결국 망명했던 걸로 압니다. 나치에 부역했던 하이데거는 베를린대학 총장도 해먹고 현대철학의 거봉으로 대접받고 있는데….여기나 저기나 원래 세상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 책 147쪽 같은 아픈 사연도 있다. 가슴 아픈 환자 사연 또는 훈훈한 사연 소개할 수 있나.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외부 요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셔서 우리 병원 장례식장을 쓰기 위해 사망한 상태에서 장례식장으로 들어온 분인데요.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야하니까 사망시간을 알아야겠지요?

장례식장 빈소에서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기에 식구 중에서 아무나 불렀습니다. 20~30대로 보이는 처자(손녀)가 저에게 다가옵디다.
의사 : 임종은 하셨습니까? 임종시간은 알고 계시나요?
처자 : 임종예? (돌아서서 뒤를 쳐다보며) 엄마!! 임종이 뭐꼬? 임종했나 묻는데??

- 중국 고전이나 우리 소설 등을 많이 읽으신 것 같다. 직업과도 관련이 있나

개업을 한 9년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환자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 근근이 버티다가 결국 정리를 했습니다. 개업의는 환자가 많든 적든 자기 진료실을 떠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진료실을 지키는 그 무료한 시간을 달래느라 책을 좀 읽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은 좀 많이 읽은 편입니다. 학생 때도 의과대학생들의 평균적인 독서량보다는 월등히 많았습니다.

▲ 매일 탈출을 시도하는 93세 할아버지. 혼자 거동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판단력도 분명히다.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입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세트(?)로 입원했다. 매일 아침 눈뜨면 집으로 가겠다고 하지만 디지털 도어록을 열지 못한다. 번호를 가르쳐드려도 번호를 외워 꼭꼭 누르시고는 '똑똑 문열어주세요' 라고 하면서 문고리를 흔든다. 저(의사) 말고는 사람이 없는지 문을 안 열어준다고 항의하는 장면이다.한평생 문을 그렇게 열고 닫았는데, 디지털 도어록? 할아버지한테는 괴물이다.
- 어느 직업이든 힘들지 않은 게 없다. 요양병원 의사, 특히 무엇이 힘든가

환자들보다는 가족들 응대가 가장 힘듭니다. 늙은 부모 몇 년씩 병수발하다 보면 전부 제 정신이 아니지요. 경제적인 타격도 타격이고요. 그 노역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고,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은 함부로 머리에 떠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런 것이고, 사소한 문제로 폭발합니다.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형제들끼리도 원수가 되기도 하고요.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자식들에게 많은 아쉬움과 죄스러움을 남겨주고 적당한 나이에 아주 짧게!!! 병치레를 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선생께서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결혼 25주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중이라 뭐라고 딱 집어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더 이상 욕심낼 게 없는 상태, 자족이 가능한 상태가 행복한 상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아직은 욕심나는 게 무지무지 많습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무지 많고요.

굳이 행복의 정의를 말하라면 쇼펜하우어가 내린 행복의 정의를 추종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행복하듯 내면의 부가 충분해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이 행복' 한 것이라는 게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입니다. 아직 저의 내면에는 거지들이 버글버글 거리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 거지들이 다 저의 내면의 세계에서 구조조정되거나 퇴출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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