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계시던 아파트가 비워지자 전세를 놓기 위해 집수리를 해야 한다. 건축한지 20여 년이 넘는 아파트는 손볼 곳이 많았다. 우선 화장실 타일부터 시공하기로 했다. 이웃으로부터 타일공을 소개 받았다. 타일공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솜씨만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말이 타일 시공이지 작업현장을 둘러보고 놀랐다. 먼지를 듬뿍 뒤집어 쓴 채 타일을 깨고, 변기를 들어내는 일은 상일꾼이 아니고는 불가능해 보였다.
시공이 다 끝난 다음 다시 들른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깨끗할 수가. 화장실, 베란다 수리는 새집처럼 깔끔해져 더욱 기분이 좋았다. 여기에다 타일공 아저씨는 나의 마음을 더욱 푸근하게 했다. 그는 시키지도 않은 아파트 뒤 베란다까지 타일을 새 것으로 바꿔놓았다. 어디 그뿐인가. 남은 타일을 상회에 반납 하였으니 그 돈을 받아가라고 한다. 사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이었지만 아저씨는 자신의 양심을 지켰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세가 높은데, 타일 시공 일이 힘들지 않으냐는 나의 질문에 매우 인상적인 답을 준다.
비록 자신은 힘든 노동일을 하지만 자신의 손끝으로 노후 된 건축 공간이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보면 성취감과 함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일을 수십 년간 하고 있지만 한 번도 자신이 하는 일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단다.
타일공 아저씨 이야기를 하다보니 감명 깊게 읽은 수필이 문득 떠오른다. 박태영 수필가 수필집『어느 날의 독백』이다.
박태영의 올곧은 선비정신과 섬세함은「후회」라는 수필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박태영은 인생을 ‘시간의 연속 속에 짜여 진 ’수(繡)’라고 정의했다. 박태영의 이 정의는 논술적 정의가 아니라, 인간 박태영의 진실한 모습 그 자체이기에 공명을 안겨준다. 수필 ‘후회’에서 박태영이 정의한 ‘수(繡)’라는 개념은 개체가 모여 제2의 단일체를 형성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개체가 모여 제2의 합성체를 형성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성과 재능의 실로 짜인 수(繡)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한편의 수필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힘을 지니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인생이라는 수(繡) 판에 나는 진정 완성된 수를 놓아왔던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지만 좀체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 편 타일공 아저씨의 삶을 통해 요즘 청년실업을 진단해 보았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 실업난 이면엔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는 3D 기피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거지반 외국 노동자들의 몫이 된 게 그것이오, 청년들이 대기업, 공무원을 선호하여 중소기업은 회피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잖은가.
이런 세태에 박태영이 짜놓은 ‘수(繡)’와 타일공 아저씨가 짜놓은 ‘수(繡)’에서 닮은꼴을 발견할 수 있기에, 한 편의 수필에서 참으로 값진 지혜를 얻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