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물음에 성철 스님이 답을 하다'
'법정 스님 물음에 성철 스님이 답을 하다'
  • 김용호 기자
  • 승인 2016.02.18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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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연령차 큰스님의 '설전'... 두 분이 나눈 대화.일화를 처음 책으로 엮다

[독서신문 김용호 기자] "스님께서 다음 생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요? 사실 '다음 생'이란 본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옷을 가지고 그 한계성을 잡아서 옷이 다 떨어지고 새 옷을 갈아입을 그 때를 이 다음 생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 사람 자체에서 볼 때는 옷 떨어졌다고 이 다음 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본시 과거도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항상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죠."(56쪽)

"대학이란 학문을 하는 곳인데, 학문은 인격 완성이 위주가 되어야지 기술 습득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그렇지만 대학을 다니면 그 목표가 첫째 어떤 직장, 어떤 지위, 얼마만한 봉급, 이것이 항상 머릿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문하는 자체의 근본이 없어집니다."(108쪽)

근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대중의 스승인 법정(法頂·1932~2010)과 성철(性徹·1912~1993)은 속세의 나이와 승려로서의 나이 모두 정확히 20년 차이가 난다. 법정이 출가하기 한 해 전인 1955년에 성철은 이미 초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될 정도로 명성과 인망이 자자했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으며, 성철은 뭇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제자뻘인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성철과 법정이 나눈 대화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인연의 흔적들을 발굴, 처음 책으로 엮은 '설전'이 출간됐다. '성철 불교'의 본질을 끌어낸 법정의 지혜로운 질문과 거기에 화답, 인간 존재와 현상의 심층을 드러내는 성철의 대답이 담겨 있다. 성철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했던 원택의 증언이 더해져 성철과 법정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법정은 경전 공부에 진척이 빠르고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실력이 뛰어나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는 등 타고난 문재를 바탕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경전을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통도사와 해인사에 머물렀다. 법정이 해인사 강원에 머물던 1967년, 성철은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다. 그리고 성철은 같은 해 12월4일부터 100일 동안의 설법에 들어간다. 이것을 '백일법문(百日法門)'이라고 일컫는데, 이때의 설법은 하나 빠짐없이 녹취됐다. 그런데 이튿날, 한 젊은 승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성철의 법문에 끼어든다. 바로 법정이었다.

성철의 백일법문이 열린 장소는 해인사 대적광전이었고, 수많은 승려와 불자가 성철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 있었다. 법정은 여기에서 아주 원론적인 질문들을 던져 성철의 형이상학적인 설법이 대중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도 이론을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중국 선종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등등의 질문은 불교의 초심자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법정은 스스로 초심학인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 성철의 법문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 묻는 것이다. 성철의 뛰어난 점 역시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법정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성철 또한 법정의 그 질문들에 일일이 성심을 다해 답했다.

법문이 무르익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기도 한다. 중국의 육조 혜능이 일자무식이었다는 이야기에 대해 법정이 성철을 따지고 든 것이다. '가야산의 호랑이'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 뭇 제자와 후학들은 성철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했으나 법정은 스스로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 역시 성철의 넓은 품이 드러난다. 성철은 마치 영민한 제자의 도전을 즐거워하는 스승처럼 법정의 은근한 도전을 즐기는 음성으로 일일이 답한다.

그리고 법정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성철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성직자가 "정말 천국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법정의 이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법정이 성철에게 던진 질문들은 성철의 설법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포석이자, 서른 후반에 접어든 '청년' 법정의 불교에 대한 간절한 관심과 생각 그리고 그의 마음 한 구석을 엿보게 만드는 창문이기도 한 것이다. '백일법문' 속 성철과 법정의 대화는 12월 5·8·9·23일의 녹취록에 담겨 있다.

"단순히 절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절을 하라고,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나를 위해서 절을 하는 것은 거꾸로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3천배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심중에 큰 변화가 옵니다. 변화가 오고 나면 그 뒤부터는 절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절을 하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남을 위해 절을 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그게 자연스러워지고 결국에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나를 만나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몇 배로 이익이지요."(21쪽)

1982년 벽두에 한 언론사의 주선으로 대담을 갖기 위해 성철과 법정은 다시 마주 앉았다. 못다 푼 응어리가 있었던 것일까? 법정은 대뜸 다시 '3000배'에 관해서 묻는다. 이날의 대화는 성철이 '3000배' 규칙에 담긴 오해를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대담에서 성철과 법정은 자아를 닦는 일상의 수행법과 불교의 근본적인 정신, 지도자의 덕목, 물질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권력과 이념에 편승하지 않는 언론,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눈다.

'백일법문' 속의 대화가 불교를 주제로 삼고 있다면, 이 대담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성철과 법정의 대화는, 선승이 세상과 외따로 떨어져 홀로 수행만 하는 존재라는 인상을 말끔히 지워 버린다. 이들이 치열하게 타인과 세상을 위해서 살아갔음을, 또 항상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 본질은 '사랑'이었다.

"생사란 모를 때는 생사입니다. 눈을 감으면 캄캄하고, 눈을 뜨면 광명입니다. 본래 생사란 없습니다. 삶 이대로가 열반이고 해탈입니다. 일체만법이 해탈 아닌 것이 없습니다."(54쪽)

법정은 "'성철 종정스님' 하면 다들 뵙기를 두려워하고 조심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스님의 인간적인 여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대할 수 있어 마음 편하게 여기고 있다"며 "그래서 '종정스님'이란 호칭보다는 '백련암 큰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에게 보다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사진첩을 통해서 마주하게 된 큰스님의 여러가지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한 인간의 도정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투철한 수도인의 진실한 삶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얼굴이란 '얼의 꼴'에서 이루어진 말임을 상기할 때, 밖으로 나타난 형상을 통해 내면의 세계에까지 우리 눈길이 닿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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