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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향기 칼럼] 아름다운 옥도 산을 떠나면 원래 빛깔을 잃게 된다황태영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 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안보당거(安步當車)란 '걸어 다니는 것이 수레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편하다.'라는 뜻으로 벼슬자리를 부러워하지 않는 청렴한 생활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에 안촉이라는 은사(隱士)가 있었다. 제나라 선왕은 안촉의 명성을 듣고 대궐로 불러들였다. 안촉은 대궐의 계단 앞에서 선왕이 기다리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제선왕은 매우 거만한 태도로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그러자 안촉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왕께서 이리 오시지요."라고 하였다. 이 말에 선왕도 기분이 나빠졌고 대신들도 화를 내며 안촉을 꾸짖었다. "왕은 우리들의 군주이시고 그대는 신하인데 이 무슨 무엄한 태도인가?" 그러나 안촉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제가 왕의 앞으로 나아간다면 권세에 굽히는 일이 되고 왕께서 제게로 오신다면 예로써 선비를 대하는 일이 됩니다. 권세로 선비를 겁박하는 왕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예로써 선비를 대하는 왕이 되시겠습니까?"

제선왕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도대체 군왕이 존귀하냐, 선비가 존귀하냐?" 안촉이 답했다. "당연히 선비가 군왕보다 존귀합니다." 제선왕은 안촉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다. 선비가 더 존귀함을 입증해 봐라. 만약 입증하지 못할 경우는 군왕을 능멸한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안촉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옛날에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할 때 진나라 왕은 덕망 높았던 선비 유하혜(柳下惠)의 묘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의 묘에서 50보 이내에 있는 초목 하나라도 훼손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사형에 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나라 왕의 머리를 베어 오는 자에게는 만호후(萬戶侯)라는 벼슬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로 보아 살아 있는 군왕의 머리가 죽은 선비의 묘만도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선왕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신하들과 안촉이 공방을 벌렸는데 그 이론이 정연하여 마침내 왕이 승복하고 벼슬자리로 그를 유혹하였다. "나를 당신의 제자로 받아 주기를 간청하오. 안선생은 이제부터 나와 같이 행동하고 식사하며 같은 수레를 탑시다. 부인과 자녀에게도 특별히 의복과 음식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안촉은 제선왕의 요구를 정중히 거절했다. "아름다운 옥도 산을 떠나면 그 원래 빛깔을 잃게 됩니다. 저는 촌에서 자랐으므로 관직에 오르게 되면 제 본모습을 유지하기 힘들게 될까 두렵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고기 대신 소박한 음식을 수레를 타는 대신 걷는 것을 부귀를 누리는 대신 아무런 죄 없이 사는 것을 쾌락을 누리는 대신 청렴한 생활을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일수록 선거철이나 정권이 바뀌면 권력의 유혹을 많이 받는다. 전문적 식견을 살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해 이름만 빌리려는 자리제안은 거절하는 것이 좋다. 사람을 빛나고 명예롭게 하는 것은 직위가 아니라 품격이다. 안촉은 관직이나 부귀영화를 초탈했기에 왕보다도 높게 후세의 귀감이 되어오고 있다. 안촉이 관직에 나가 어떤 일을 했었더라도 관직을 거절한 저 실천적 본보기보다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퇴계나 남명선생이 지금까지 존경의 대상이 되어오는 것은 영의정이나 좌의정을 해서가 아니다.

고결한 품성과 학문적 위업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분은 그 분야의 전설로 남는 것이 좋다. 그 분야의 후학들을 비춰주는 등불이 되고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얼굴을 들고 세수를 하셨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시니 소매뿐 아니라 바지까지 다 젖곤 했다. 세수를 왜 그리 힘들게 하시느냐고 묻자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답하셨다. “세상이 모두 왜놈 세상이니 어떻게 머리를 숙일 수가 있겠느냐?” 선생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일제는 선생을 옥사시켜 민족적인 격분을 사기보다는 가석방시키려고했다. 유력한 신원 인수인이 나타나면 즉시 출옥시켜 주겠다고 했다. 선생의 친구들이 먼 친척인 부호를 어렵게 설득하여 신원 인수인이 될 것을 승낙 받았다.

그 친척이 친일파라 소식을 접한 선생은 대로했다. 일제에 빌붙어 재산을 축적한 자에게 신세를 지느니 차라리 이대로 옥사하는 것이 낫다고 하시면서 출옥을 거부하고 옥사하셨다. 지위가 높은 사람보다 기개가 높은 사람이 그립다. 선비를 왕보다 높고 귀하게 대해야한다. 나라의 자부심은 왕이 아니라 선비다. 선비가 나라의 얼굴이며 선비가 나라의 자랑인 것이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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