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읽다보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정신의학의 신대륙
[서평] 읽다보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정신의학의 신대륙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2.03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 428쪽 | 19,800원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1848년 미국 버몬트, 철도 노동자 게이지가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1미터 길이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한다. 그러나 죽지 않았고 사고 몇 분 뒤엔 걸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게이지 머리에서 쇠막대를 뽑아냈고 쇠막대가 지나가 뻥 뚫린 머리뼈를 붕대로 감았다.

4개월 뒤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한 게이지, 그러나 사람이 확 변했다. 성실하고 온유한 성격의 게이지가 전과 달리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사람들과 툭하면 다툼이 생겼다. 일상의 행동에는 문제없었지만 논리적 생각, 예측 능력, 판단 능력을 상실했다.

게이지는 12년 뒤 간질 발작으로 죽었다. 의학계는 한 가지 큰 수확을 얻었다. 전두엽의 손상이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즉, 뇌의 변화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게이지의 사례는 마음의 문제로만 여기던 성격이 두뇌에 생물학적 기반을 두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 다른 예 하나. 1975년 미국에서 신출귀몰하는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가 붙잡힌다. 미혼모 시설에서 태어난 번디는 내성적인 소년으로 자라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닌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고 졸업 후 정치에 관심을 갖는 등 특이한 점은 찾을 수 없는 생활이었다.

번디는 최소 3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여성을 납치 살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정신이상으로 무죄를 주장하다 결국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번디는 훤칠하고 매력적인 외모에 지적이고 상냥한 말투였다. 그가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다음에도 전국에서 그를 흠모하고 그의 결백을 믿는 사람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옥중 결혼까지 했다. 선량한 모습만 봐서는 결코 범죄자라고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범죄자일까, 심한 정신질환자일까. 감옥을 가나 병원으로 가나 자유가 제한되는 것 같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180도 다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는다, 인격장애의 특징이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16가지나 된다.

 
책 『정신의학의 탄생』의 저자 하지현은 정신의학 발전의 전환점이 된 42개의 순간들을 뽑아내 사진 찍듯이 몽타주로 만들었다. 저자는 이를 펼쳐놓고 보면 형체를 그리기 어려운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 뇌, 심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전방위에 걸쳐 시도했던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의학이란 기본적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병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섭렵하고 역사적 흐름을 관찰하고 나면 이제 어떤 마음이 평온하고 건강한 것인지 어떤 세상이 안전하고 이상적인 사회인지 나름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정신의학이 다루는 부문이 참 많은 것 같다. 무릇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건 정신이고, 정신은 바로 뇌에서 나온다 보면 정신의학은 모든 행동의 과학적 분석이라는 해석도 과감히 해본다. 그런 점에서 섹스도 정신의학의 한 분야다. 섹스 연구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킨제이다.

1940년대 후반 처음으로 섹스가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에 중요한 주제임을 공론화한 연국 결과가 나오면서 인간의 성이 의학적 대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매스터스와 존슨은 논의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들은 성 문제를 의학적 질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진단적 기준을 제시했다. 이처럼 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의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정신의학에서 성의학이라는 전공이 성립됐다.

저자는 또 거식증과 폭식증도 정신질환의 문제라고 말한다. 거식증 환자들이 식욕이 없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뚱뚱하다고 믿는다. 마치 볼록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 모습을 왜곡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감과 절망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을 상담할 때, 의사가 정신분석가였다면 당연히 정신분석적 접근을 할 것이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게 흠이다. 이때 나온 게 엘리스의 정서행동치료다. 수동적으로 환자의 말만 듣기만 하는 정신분석과 달리, 환자에게 적극 개입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크게 다르다. 이는 서구 정신의학에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세계는 무한한 어둠 속 한 점 아주 작은 빛일 것이다. 그 빛을 찾아 더욱 밝히는 게 정신의학이다. 의사들 과학자들의 노고가 대단하다. 그나저나 정신의학을 연구하려면 무엇보다 정신력이 강해야 할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