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 독서신문
  • 승인 2016.01.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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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부스먼 지음 『첫눈에 신뢰를 얻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를 읽고

▲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젊은 날 일이다. 통기타와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사회초년생의 관문인 회사 취직 면접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궂은 날씨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나는 파란 블라우스와 하얀 나팔바지를 갖춰 입고 내 딴엔 한껏 멋을 부리며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 나와 동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미처 우산도 준비 못한 나는 당황하여 정류장 근처에 있는 세탁소 앞 처마 아래서 비를 피했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준수한 외모의 내 또래 청년이 우산 속에서 급히 나오더니 내가 서 있는 세탁소 처마 밑으로 쳐들어왔다. 그 청년은 다짜고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소낙비가 쏟아지는데 흰 바지를 입고 나오면 어찌합니까? 보아하니 제 여동생하고 몸매가 비슷한데 괜찮다면 여동생 바지로 갈아입고 가시지요?”하며 나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본 청년은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라는 눈짓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청년의 갑작스런 제의에 그제야 나의 바짓가랑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빗물이 튀어 바지가 온통 흙탕물로 얼룩져 있었다. 손목시계는 면접시험이 임박함을 알리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갈 형편도 못되었다. 당황한 내가 안절부절못하자 그는 사태를 짐작한 듯 불쑥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서는, “제 여동생 바지 세탁 맡긴 것 찾으러 왔는데, 여자 친구가 옷이 엉망이니 여기서 갈아입게 얼른 주세요.”라고 재촉한다. 나는 남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청년이 권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사이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청년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나는 그날 면접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다음날 그 바지를 세탁소에 맡기며 세탁소 주인한테 그 청년의 연락처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그 청년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비오는 날 세탁소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문득 그 청년이 생각나곤 한다. 그럴라치면 세상을 살며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자못 궁금해질 때가 있다. 세상 살다보면 이름 석 자 만 떠올려도 그 이름에서 악취가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렇듯 모습만 떠올려도 가슴이 훈훈히 덥혀지는 사람도 있다. 그 청년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인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움도 그 실체가 다양하다. 그리움이 때론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린 날 고향에서의 추억은 삶에 부대껴 주저앉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지팡이가 되곤 하였다. 무엇보다 그날의 그 청년이 요즘 따라 간절히 그리운 것은 살벌한 세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천륜을 저버리는 부모의 자식살해 시신 훼손, 냉장고 사건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인면수심의 사건들이 매스컴을 장식할 때마다 윤리와 도덕이 헌신짝이 된 작금의 세태가 한탄스럽다. 이런 세상 살아가노라니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워진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라 사람과 결별하고는 살아갈 수 없지 않는가.

이쯤에서 감명을 주는 한 권의 책이 생각난다. 니콜라스 부스먼 지음 『첫눈에 신뢰를 얻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이다. 그 중에 으뜸인 제목이 있다.「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되어라」가 그것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대화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비즈니스에 성공하는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가장 절실한 무엇을 갈구할 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고 했다. 상대방의 기억 속에 얼마나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이왕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라면 그야말로 뜸들일 이유가 없다. 특히 상대방이 무슨 일로 힘들어 할 때 기분 좋게 먼저 베풀면 얼마나 진심으로 그것을 고마워할까? 대인 관계에서 성공하는 비법은 무엇으로든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일이 아닐까싶다.

사람은 비록 사소한 일일지라도 자신의 가슴을 움직여 준 사람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간직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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