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침묵은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발한다
관용과 침묵은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발한다
  • 독서신문
  • 승인 2016.01.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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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향기'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 회장,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혜전탈우(蹊田奪牛)라는 말이 있다.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그 소를 빼앗는다는 뜻으로 죄는 가벼운데 처벌은 혹독함을 이르는 말이다. 진나라의 대부 하징서는 자기 집에 놀러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왕 영공을 죽였다. 그러자 초나라 장왕이 국가의 질서유지와 대의를 위해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의 수도를 공략하고 하징서를 처형했다. 사람들은 하징서의 악행을 잘 응징을 했다고 환호하며 장왕을 칭송했다. 막상 진을 점령하게 되자 장왕은 땅 욕심이 났다. 그래서 진나라를 빼앗아 초나라의 한 고을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 마침 제나라 사신으로 갔던 신숙시가 돌아왔다.

신숙시는 그저 사신으로 다녀온 일만 보고를 하고 하징서를 벌한 것을 칭송하지 않았다. 그러자 불쾌해진 장왕이 말했다. “하징서가 무도하게 임금을 시해했기에 응징하고 기강을 바로 잡았는데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신숙시가 답했다. "임금을 시해한 죄는 크고 이를 처단하신 것은 감읍할 일입니다. 그러나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소를 빼앗는다면 가혹한 처벌이 됩니다. 죄를 응징한 것은 칭송받을 일이지만 진나라를 빼앗은 것은 탐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를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장왕은 수긍하고 즉각 진나라를 원상 회복시켜 주었다.

사람들은 자칫 혜전탈우의 우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업일을 하던 대리직원이 슬럼프에 빠져 실적이 부진했다. 담당 부장이 불러서 질책을 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느냐, 회사가 공짜로 밥 먹여 주는 줄 아느냐” 근무태도부터 복장까지 업무와 관련 없는 것도 장황하게 트집 잡고 질책을 했다. 그 부장은 자신이 화를 잘 내고 직원들을 과하게 다그치는 것을 업무를 잘하는 것인 양 늘 자랑하며 다녔다.

한 친구가 부장에게 말했다. “질책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 부장이 답했다. “하하, 너무 걱정 말게. 나는 화도 잘 내고 성질이 나면 있는 말 없는 말 막 해대는 성격이지만 뒤끝은 없다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자네는 화가 오래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자네에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네.”

요즈음 여야, 노사, 기업과 소비자 등 모든 관계들이 사소한 불만도 즉각 과민하게 반응하며 상대를 응징하려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에게 상처 주며 자신의 잘남을 자랑하는 힘 있는 사람보다는 관용과 침묵으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사람이 더 격 있고 높아 보인다. 모든 행동에는 그에 합당한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성급하게 화부터 내기보다 한번쯤은 상대의 입장에 먼저 서 보려해야 한다. 많은 말보다 침묵이 더 무거울 때가 있다. 나무를 심는다고 당장 그늘이 생기지는 않는다. 쌀에 물만 붓는다고 바로 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뜸 들이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한다.

윤회는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명신이다. 문장의 최고봉일 뿐 아니라 술도 잘 마셔 과음을 할 때가 많았다. 그 재질을 아낀 세종이 술을 석잔 이상 못 마시게 어명을 내렸다. 그러자 그는 술잔을 바꾸어 큰 그릇으로 석 잔씩을 마셨다. 세종은 술을 금하는 것이 도리어 권하는 셈이 됐다고 웃었다. 윤회가 젊었을 적 이야기이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날이 어두워졌다. 그는 마을의 부잣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자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서성이고 있는데 주인집 아이가 커다란 진주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마당 가운데 떨어뜨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흰 거위가 진주를 바로 삼켜버렸다. 얼마 후 주인이 진주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온 집안을 다 찾아도 나오지 않자 윤회가 훔친 것으로 의심하며 결박을 지었다. 아침이 오면 관가에 끌려갈 처지였지만 윤회는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단지 거위를 자기 옆에 같이 묶어 달라고만 했다. 이튿날 아침 거위의 똥에서 진주가 나오자 주인이 부끄러워 사죄하며 말했다. “거위가 진주를 삼킨 것을 알면서 어째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윤회가 답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성질이 급해서 진주를 꺼내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것입니다.” 말 못하는 미물이나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최고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최고의 맛은 입을 자극하지 않고 최고의 색은 눈을 현란하게 하지 않고 최고의 소리는 귀를 거스르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윤회의 관용과 침묵은 그 빛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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