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보이지 않는 칼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보이지 않는 칼
  • 독서신문
  • 승인 2016.01.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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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숙자 수필집 『거기 사람이 있었네』를 읽고

▲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장롱 서랍 속에 들어있는 ‘금 은장 십장생문옥장도’를 다시금 살펴본다. 한학자 집안의 따님이셨던 외할머니께서 내게 주신 장도(粧刀)다. 금과 은 장식을 옥에 붙여 십장생 문양을 새긴 그 장도는 외증조할머니께 물려받은 물건이란다.

경주김씨 집성촌의 종가 며느리였던 증조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이 요절하자 이 장도를 늘 몸에 품고 세상 풍파와 맞섰다고 한다. 청상과부로 겪어야 할 온갖 세상사로부터 증조할머니를 지켜낸 장도이다.
 
장도를 바라보자 문득 우리 옛 조상들의 충절과 지조가 새삼 떠오른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냈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말렸던 그 가족들 또한 장도로 제 목숨을 끊어 노비로 팔려가는 신세를 면하지 않았던가.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몇 년간 자신의 몸을 왜놈들에게 더럽히지 않으려고 스스로 장도로 목숨을 끊은 정절부인이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듯 장도는 지조와 절개를 목숨처럼 지켜준 칼이다. 이러한 칼이 요즘엔 엉뚱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니 한탄스럽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걸핏하면 남에게 칼끝을 들이 대는 게 요즘의 세태다. 지조를 세우고 명예를 지키던 칼이 어느 사이 흉기로 둔갑한 것이다.

이 장도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긴 반숙자 수필가의 수필집 『거기 사람 있었네』를 읽다가 특히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었다.「칼」이란 제목의 수필이다. 이런 묘사가 나온다. ‘어찌 생각하면 사람의 몸집은 칼집이다. 누구나 똑 같이 잘 드는 칼 하나를 몸에 지니고 산다. 보이지 않는 이 칼은 잘 쓰면 상처를 봉합시키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남도 베고 자신도 베어 상처를 남긴다.’ 평범한 표현 같지만 철학이 담겨 있다. 세상사 모든 구도가 그러하지 않는가. 이렇듯 인간의 마음을 어느 자락에 놓느냐에 따라 그것이 유용할 수도 때론 해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건을 베고 깎고 썰고 하는 연장이 칼이다. 반숙자 작가의 글 속엔 권력이란 세상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에 깊이 감춰진 보이지 않는 칼, 시퍼렇게 날이 선 칼보다 더 예리하고 무서울 수도 있다.

지난날 외할머니께서 이 장도를 내게 주시며 “모름지기 사람은 마음의 칼날을 항상 잘 사용해야 한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땐 철이 없어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었는데 이제야 깨닫게 된다. 어떤 사안에 부딪혔을 때 과감히 어느 한 쪽은 결단내야 할 때도 있다. 이렇듯 마음의 칼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소리다. 평소 타인을 배려하고 애타심을 가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기, 질투로 하여 원심原審을 접을 때가 있다. 마음의 칼을 잘못 쓰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의와 정을 단 칼에 베어버리는 경우도 목도한다. 배신의 칼날은 무섭다. 한순간에 공(功)과 정(情)을 베어버리는 게 배신이다. 그로인해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불신과 이기심이 팽배해져 사회가 밝지 못하다. 배신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수필가 반숙자의 ‘보이지 않는 이 칼은 잘 쓰면 상처를 봉합시키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남도 베고 자신도 베어 상처를 남긴다.’를 연상하며 그려낸 문장이다.

우리 조상들에겐 본받을 만한 귀감이 참으로 많다. 당신들이 품었던 정신이 그렇고, 근면성이 그렇다.
 
수필가 반숙자가 가다듬어 낸 장도를 저마다 가슴에 품고, 이기심과 지나친 물욕을 베어내고 스스로를 정화해 보자. 그리하여 우리 모두 붉은 원숭이 해인 올해에는 사랑 나누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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