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훌륭한 닮은 꼴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훌륭한 닮은 꼴
  • 독서신문
  • 승인 2015.12.23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광모의『인맥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를 읽고

▲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어려서 어머니 심부름을 곧잘 했었다. 초등학교 때 동생을 출산 한 어머니 첫 국밥을 끓여드리기 위해 미역도 사고 쌀도 사왔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 때 2키로 남짓한 읍내에 가서 호롱불을 밝힐 석유를 사오라는 심부름도 했었다.

살을 에는 혹한에 더구나 밖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읍내를 가려면 마을 공동묘지를 지나가야 하는데 그곳엔 흰옷 입은 귀신이 자주 나타난다는 소문이 난 곳이었다. 요즘 어린이 같으면 그런 심부름은 하지도 않을 것이며 부모님이 아예 시킬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닌 달랐다. 형제 중에 유독 겁이 많은 나의 담력을 키울 요량이었을는지 모른다. 하필이면 나에게 깜깜한 밤길을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내 키만 한 석유 병을 잔뜩 끌어안고 읍내를 다녀왔다.

산모롱이와 공동묘지 앞을 지나올 때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가 쭈뼛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 봐도 어느 납량 특집극 못지않았다. 결국 그 심부름은 나를 겁쟁이에서 벗어나게 하는 좋은 심부름이 되었다. 석유 심부름을 한 이 후 밤에 혼자서도 문밖 화장실을 갈 수 있을 정도로 간담이 커졌다.

나는 어머니 심부름만 잘했던 게 아니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자손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걸핏하면 내게 대필케 하였다. 어느 경우엔 내 앞에서 구술을 하신 후 알아서 편지글을 써달라는 이웃집 할머니도 계셨다. 그러면 나는 편지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글을 써 내려 갔었다. 구구절절 기나긴 사연을 여러 장의 편지지에 쓴 후 큰 소리로 읽어드리면 할머니는 “아이구! 어쩜 이리 내 마음을 잘 헤아려 편지를 썼을까? 너 나중에 커서 문장가 되겠다.” 하고 칭찬을 하시곤 했었다.

훗날 문단에 입문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때의 편지글 대필이 일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동네 어르신들의 편지글 대필을 도맡아 하다 보니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을 곁에서 자주 뵐 수 있었고, 한편 부모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도 알게 되어 일찍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로보아 어머니의 잦은 심부름, 어르신들의 편지글 대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그러고 보니 양광모의『인맥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의 목록 중「아이를 심부름꾼으로 만들어라」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로 앞을 못 보는 초등생 딸에게 물건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후 부모가 뒤를 따라가며 딸을 지켜보는 모습이 방영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당장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수 있지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애달픈 사연이 주제였다.

촉탁 살인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뉴스를 접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따라 이 내용에 더욱 깊은 공감을 느낀다.  한창 꿈을 펼치고 살 젊은 나이에 타인에게 자신의 죽임을 부탁하는 일은 범죄이기 앞서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다. 죽을힘으로 자신의 삶을 당차게 꾸려나간다면 어떤 역경도 인생의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나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어머니의 밤 길 심부름은 맹모의 삼천지교 이상으로 현명하셨던 것이다.  10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현인이다. 어려서의 심부름은 2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길러 주는 지도 모른다. 산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의미에서 필자의 어머니와 시각장애의 딸을 심부름 시키는 부모와 분명 닮은꼴이 있었다.

‘개권유익’이라고 했던가. 양광모의『인맥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는 분명 나에게는 한 권의 고전이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