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해방이 행복… 남 피해 안주는 윤리
고통 해방이 행복… 남 피해 안주는 윤리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12.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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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타자 중심의 윤리: 정의 확립을 위한 한 이론적 시도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 어떤 사람이 행복한데 좀 더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비도덕적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독서신문] □ 인간과 도덕

자연과 인간이 모두 인류에게 고통과 이익을 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오직 인간에게만 요구할 수 있다. 자연에는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연에는 도덕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도덕이 가능하고 필요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행위는 ‘해도 되고’ 어떤 행위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마땅히 약속을 지켜야 한다”든가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명령은 사람에게만 적용될 뿐 자유가 없고 책임을 질 수 없는 짐승에게는 요구되지 않는다.

- 최소고통론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고통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해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전에 우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게 하기 전에 굶주리지 않게 해야 하고, 멋있는 옷을 입히기 전에 헐벗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식량을 빼앗거나 그의 옷을 훔치므로 그를 굶게 하고 헐벗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우선순위는 우리 자신이 택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행복을 증진하는 것보다는 중요한 것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것은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고 고상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도덕적 의무로 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데 좀 더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비도덕적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여기서 ‘해’란 ‘부당하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함축한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기 위해 고통을 가하는 것을 하라 하지는 않는다. 모든 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통과 연결돼 있으므로, 윤리적 행위는 직?간접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윤리란 적극적인 것이 아니라 소극적이며, 행위가 아니라 행위의 정지이다. 즉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음식과 옷을 줘 더욱 건강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죽이지는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도둑질은 하지 않아야 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해서 큰 이익을 보도록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거짓말을 해서 속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는 소극적이란 주장에 하나의 예외가 있다. 윤리학에서 말하는 부작위(不作爲, omission)의 문제다. 즉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사람에게 고통이 가해지는 경우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경고해서 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경고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이 큰 고통을 당하게 방치하는 것은 분명히 비도덕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윤리란 직접 혹은 간접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 예의와 달리 법률은 매우 강한 당위다. 지키지 않으면 상당한 고통을 동반하는 벌을 받는 것이다.

-예의, 윤리, 법률

우리의 삶에서 당위가 적용되는 분야는 예의, 윤리, 법률 세 가지다. 이들은 모두 우리에게 어떤 행위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법률이고 가장 약한 것은 예의다.

예의도 당위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윤리와 혼동해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윤리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상당할 정도로 보편적인 반면에 예의는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기관이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겨나는 사회적 관습에 불과하다.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가 일곱 살이 넘으면 같이 앉아서는 안 됐지만 지금은 그런 예의는 없어졌다. 서양에서는 트림을 하면 실례지만 중동지역에서는 식사 후에 트림을 하지 않으면 실례가 된다. 예의를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고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례를 해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조금 상하게 할 뿐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지 않고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무례나 실례에 대한 처벌도 매우 가볍다. 무례한 사람이란 사회적 평판이 처벌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법률은 매우 강한 당위다. 지키지 않으면 상당한 고통을 동반하는 벌을 받는 것이다. 영어로 고통(pain)이란 단어는 벌이란 의미를 가진 poena란 단어에서 유래했다 한다. 물리적 제재까지 가하면서 명령하는 것은 그것을 어기면 상당히 심각한 결과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의나 윤리와 달리 법률은 타율적이고 물리적 폭력을 포함한 강제력이 동원될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적인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된다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충분히 성숙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면 법률의 상당 부분은 없어져도 될 것이다. 윤리가 법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축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역으로 시민들의 도덕적 수준이 낮고 무책임하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률이 많아지고 강해질 수밖에 없다.

/ 정리= 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초구민회관)에서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가 ‘타자 중심의 윤리: 정의 확립을 위한 한 이론적 시도’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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