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버스는 줄에 묶여 속절없이 끌려 간다. 버스 차창은 쇠파이프에 여지없이 깨지고 부서진다. 깨진 창문 틈으로 긴 쇠파이프를 마구 찔러댄다. 이 주인공들은 모두 누구인가. 같은 대한민국 땅 위에 한 공기를 호흡하는 우리 국민들인가.
노동개악을 규탄하고 국정교과서 반대를 주장하면서 쇠파이프는 어떤 구실을 하는 건가. 어느 해설자는 이번이 민노총 등 운동권에겐 호기라는 것. 노동개혁, 국정교과서 등 여러 이슈가 있고 특히 총선을 앞두고 세 결집 등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거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를 비우고 출국한 상태. 그들이 청와대로 가서 박 대통령 혼을 빼놓자는 구호는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어쩌자는 건가. 이제는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1970, 80년대를 관통한 시대적 아픔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시위는 대체로 목적이 명확했다. 그러나 그 때도 폭력은 결코 환영받을 수 없었다. 교통 불편 등은 감수할 수 있어도 폭력은 안됐다. 당시는 진압도 지금보다 훨씬 강해 종종 불상사를 불렀다. 당시의 아픔은 온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민주화라는 구호는 전가의 보도처럼 통용되는 부작용은 있었어도 명제가 워낙 강해 부작용들은 묻히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청년들을 보라. 오죽하면 삼포세대라고 하나. 그들의 관심은 정치에 있는 게 아니다. 일자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와 엄청난 변화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기성세대라고 좀 나은 것도 없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너나없이 모두 경제 걱정이다. 누군가 그런다. “(시위대) 저들은 뭐 먹고 사냐. 일자리는 있는 사람이냐”고.
물대포도 문제다. 미지근한 대응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놨다. 수배 중인 인물이 인터뷰하는 걸 보고도 잡을 수 없다. 경찰의 무능에 법적 문제도 있다. 작은 불상사에도 경찰 측 주장은 법적으로 힘을 쓸 수 없다고 한다. 사법부도 시위대에 유리한 판례를 여럿 남겼다. 물에 물탄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