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가을과 시월의 마지막 밤
돌아온 가을과 시월의 마지막 밤
  • 백승훈 기자
  • 승인 2015.10.26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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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희의 세상보는 눈
▲ 본지 노익희 취재본부장
벌써 33년 전의 일이다. 군 입대를 위해 까까머리를 하고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곱게 길러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오로지 명령에 움직여야만 했던 몇 주간의 교육을 끝낸 우리는 깊은 노을이 지는 넓은 연병장에서 석별(惜別)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연병장에 울려 퍼지던 한 친구의 노래에 이백 여명이나 되던 동기들은 모두들 그야말로 펑펑 눈물을 흘렸었다. 평생에 그렇게나 서럽고 슬프게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래 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훈련을 받던 청춘들의 설움에 감정의 마그마를 터뜨려 버린 시월의 영향이었던 것이다.시월(十月)은 그 소리에 따라 적기 때문에 속음으로 표기되는 달이어서 그런지 일 년 중에 감성이 가장 풍부해 지는 달이기도 하고 결혼의 계절이기도 하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청춘남녀들이 가정을 이루는 시작을 가장 많이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미학적인 견지에서 시월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멜로장르에 있어 독보적인 영화 <시월애>도 완성된 가을의 감성을 가미해 해피엔딩으로 스토리를 그려내 박수를 받았다.‘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좋고 열매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니 시내를 이루고 바다로 가느니.’ 용비어천가 구절로 569돌 한글날을 맞아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초청으로 서예의 대가 정도준 선생이 먹을 담뿍 머금어 썼던 글이다. 그는 강직하면서도 예(藝)스러운 글씨를 조형성을 가미해 완성해 이탈리아인들을 감동시켰다. 국보 제 1호 숭례문과 울산 태화루 현판 휘호를 쓰기도 한 소헌은 서양인들이 한글의 의미를 읽을 수는 없지만 작품으로서 그 품격을 느낄 수 있다며 한글을 어떻게 추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느냐가 영원한 숙제라고 말했다. 울산의 거람 김반석 글그림 작가도 ‘글과 그림으로 한글을 품다’라는 개인전을 한글날을 기념해 인사동에서 가지며 소통의 도구로 한글을 알리고자 했고, 혜암 김상복 전각가도 문경에서 행위예술공연을 펼쳤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인 울산에서도 한글문화예술제가 성대하게 열렸다.‘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노랫말처럼 시월의 울산은 축제가 한창이다. 며칠 전 중구의 마두희축제가 원도심에서 35만명이나 참여해 성료되고, 처용문화제, 봉계한우불고기축제, 한글문화예술제, 울산 영남알프스억새축제 등이 성황리에 끝나고 무룡예술제, 울산배축제, 울산119안전문화축제 등이 계속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축제가 끝나면 아름다운 자연의 축제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억새, 갈대, 국화, 단풍, 바다와 산… 시월이 가을의 정점을 찍는 이유가 확실해 지는 대목이다.33년 전 군대동기의 노래를 들으며 펑펑 울던 진한 기억들, 서예를 가르쳐 주고 글을 일러 인생을 잡아 주었던 소헌 선생님의 목소리, 두동과 성남동의 조용한 갤러리에서 환하게 언제나 반겨주는 거람과 혜암의 미소가, 가을로 가득 찬 만추에 가 보았던 밀양 표충사의 절경이, 짧지만 아름답게 찾아 왔다 가버리는 가을의 나비들이, 감정억제를 못해 경고를 받고 더 성숙해진 이람이의 얼굴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익어가는 주름들이 시월애(十月愛)를 더욱 깊어가게 한다./노익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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