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대리 미팅' 시대
부모들의 '대리 미팅' 시대
  • 독서신문
  • 승인 2015.07.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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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지금'
▲ 양정석 칼럼니스트

[독서신문] 세상이 참 웃기게 돌아간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지만, 도대체 부모의 자식 챙겨주기가 어디까지인지 감을 잡기 힘든 세상이 됐다. 진화된 '캥거루족'은 단순히 부모의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차원을 넘어서, '당신들이 귀찮으면 내 짝을 빨리 찾아달라'고 배짱을 퉁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자식들 대신 부모들끼리 단체로 '미팅'을 해 사위, 며느릿감을 점찍는 활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들의 단체 미팅뿐 아니라 부모들 간의 1대1 만남을 주선하는 모임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교토시에 있는 일반사단법인 '료우엔 오야노카이(좋은 인연을 만드는 부모 모임)'는 지난 2005년부터 부모들의 대리 미팅을 230회 개최해 1만 7,000여 명의 참가 인원을 기록했다. 후쿠오카현에는 이 모임 이외에도 10개 이상의 단체 또는 기업이 비슷한 취지의 행사를 매년 열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후쿠오카뿐 아니라 일본 열도 전역으로 부모들의 대리 구혼 활동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자식들의 지각 결혼 또는 결혼 포기를 걱정하는 부모들은 모임에 참석해서 다른 부모들과 기본적인 정보를 주고 받은 뒤, 대화를 나누다가 마음에 들면 서로의 자식에 대한 상세한 신상 정보가 담긴 서류를 교환한다. 부모들은 일단 신상명세서를 받아 집으로 가서는 자식들과 상의해 진짜 맞선을 결행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부모들이 들고 다니는 자식들의 신상 명세서에는 학력, 직업, 연봉, 신장, 체중, 혈액형, 취미, 장점, 가족 구성 등의 개인 정보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을 둔 부모들은 결혼을 해서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지 여부를 집요하게 캐묻기도 하는데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절대 서류 뭉치를 건네지 않는다. 물론 서로 오케이만 하면 인원 수에 상관 없이 현장에서 서류 교환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여성들도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됐다. 남성, 여성 모두 일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데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내에서는 서로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개인적인 감정 표출을 가급적 꺼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지역 내에서 가까운 곳의 사람들을 사귄다는 것도 옛 말이 돼 요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짝 찾기에 관한한 안팎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맞선에 의한 결혼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5%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과거에는 주거지나 직장을 중심으로 지인들의 소개로 배필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것을 기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일본인들 중 평생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남성은 20%, 여성은 10%를 넘고 있다. 소자녀화와 맞물린 만혼과 비혼 문제는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에 치여 데이트할 시간도 없고, 옛날처럼 인맥을 이용한 맞선 주선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냉랭한 사회 분위기가 부모들의 '대리 미팅 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참 사랑에 목말라 몸부림치면서도, 평생의 반려자 추천 리스트를 부모로부터 건네받아야 하는 현실. 비단 일본인들뿐 아니라, 바로 그 모습이 거울 속에 비친 모든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 도쿄(일본)=양정석(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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