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배려', 그리고 '품격 있는 사회'
'나눔'과 '배려', 그리고 '품격 있는 사회'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5.07.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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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영조 때(1776년) 낙안군수 류이주 선생이 지은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운조루는 조선왕조 양반가옥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7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완공될 만큼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하다. 운조루의 후미진 곳간 채에는 커다란 쌀뒤주가 있었다.

이 뒤주의 아래 부분에 가로 5cm, 세로 10cm 정도의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을 만들어 여닫는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두었다. 즉, 누구든 마음대로 마개를 열고 쌀을 퍼갈 수 있었던 '나눔'의 뒤주였던 것이다. 운조루는 이 뒤주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두어 쌀이 필요해서 가져가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끔 세심하게 '배려'까지 해주었다.

운조루에는 또한 '나지막한 굴뚝'이 있었다.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식량이 부족한 이웃이 많은데 밥 짓는 연기를 날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것 내 맘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냐'가 아니라 이웃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상생'의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대저택인 운조루가 근현대사의 수많은 변란 속에 지주계급이 무참히 처단되고 가옥이 소실되는 가운데서도 230년이 넘도록 그 원형을 지키며 보존돼온 이면에는 이같은 정신이 있었다.

'소욕다시(小慾多施)'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참다운 삶을 위해서는 욕심을 적게 갖고,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정스님께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눠 가질 줄 알아야 한다. 나눔은 이미 받은 것에 대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보상의 행위이고 감사의 표현이다. 그러나 명예나 이익을 위해서 봉사(나눔)를 실천해서는 안 되며, 봉사를 했다고 해서 우쭐거리거나 은혜 갚기를 바라서도 안 되며, 대상자를 가려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살아왔다. 이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수식어를 얻으며 세계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산업화에 따른 물질문명의 지배와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가 되면서 나눔과 배려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다.

정보기술(IT)과 문화의 발전상을 놓고 볼 때 21세기는 '소통만개(疏通滿開)'의 시대다. IT가 우리에게 안긴 가장 큰 선물은 '소통'이다. IT시대, 우리는 '소통만개'를 꿈꿨다. 만개한 소통을 기반으로 국가 자산 중 최고로 꼽히는 '국민공감대 형성'을 이뤄갈 것이라는 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곳곳에서 '소통부재'를 외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소통의 근간인 '진정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나눔과 배려'를 희구하는 정서를 외면한 탓이다. '더 있는 쪽에서 덜 있는 쪽에 준다'는 생각을 넘어, '함께 행복하기 위해 함께 나눈다'는 생각이 넘쳐날 때 비로소 '소통만개'는 가능하다.

'과시하지 않고, 없다고 구걸하지 않는 정신'이 큰 화를 막고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운조루는 200여 년 동안의 선행이 있었기에 대변혁기 속에서도 기적처럼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운조루 주인의 마음이 모두를 감동시켰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역사는 '난세를 배려와 상생의 지혜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요즈음 힘들다"고들 많이 말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은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코끼리는 '이빨(象牙)'이라는 보물을 지니고 있기에 그 몸을 불태워 죽임을 당한다. 나의 잘남을 자랑할 것도, 남의 잘남을 부러워할 것도 없다. 드러내지 않으며 더불어 사는 지혜, '나눔'과 '배려'를 통해 '상생'을 실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고, '국민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나눔', '배려'와 함께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예(禮)의 회복'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동안의 압축성장에 대한 후유증으로 고산병(高山病), 잠수병(潛水病)을 앓고 있다. 이대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다가는 엎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다. 하여 끊임없이 실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다.

결국은 '기본'이다. 과연 우리가 문화인다운 매너와 품격 그리고 자세를 지녔는지, 또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체질개선작업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는 이 나라 리더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숙제이기도 하다.

격(格)이 없는 것은 반드시 추락한다. '국격'을 높여야 한다. 국격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품격 있는 사회'이다.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해 또하나 중요한 덕목이 바로 '예'이다. 모든 관계에는 예가 바로서야 질서가 잡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최소한의 배려와 믿음, 존중과 공경이 사라지면 혼란과 무질서로 모두가 불행해진다. '자살 1위 공화국'에 반인륜적 파렴치한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경제성장보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리사욕과 탐욕, 충동과 감정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해야 한다.

'삼지례(三枝禮)'란 말이 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을 때 절대 어미 새와 같은 가지에 앉지 않는다. 어미 새가 앉은 가지로부터 세 단계 낮은 가지에 앉아 부모에 대한 예를 표한다. 맹수인 사자도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의 먹이를 탐하지도 않고 먹다 남은 먹이를 자신만을 위해 따로 감춰두지도 않는다. 배가 불러도 사냥을 계속하려는 탐욕은 인간 세상에만 있다.

야생 동물세계에도 공존·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질서와 예가 있다. 야생 동물만도 못한 사람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경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기에 앞서 이에 걸맞은 문화 선진국이 돼야 한다. 돈보다는 사람을 중시하고,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통해 예가 살아 숨쉬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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