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讀書)가 있는 '여름휴가 풍경'
독서(讀書)가 있는 '여름휴가 풍경'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5.07.15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조선 세종 8년(1426년) 집현전 학자인 권채 신석견 남수문에게 어명이 떨어진다. "일에 치여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 테니 당분간 본전(本殿)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열심히 독서를 해 성과를 내도록 하라." 휴가를 줘 책 읽기에 전념하도록 한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다. 세종은 짧게는 몇 달,길게는 3년까지 집이나 한적한 절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했다. 독서에 필요한 비용을 대준 것은 물론 음식과 의복까지 내렸다.

세종 6년에 시작된 '사가독서제'는 간혹 중단되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300년 이상 유지됐다. 성삼문 신숙주 서거정 등 걸출한 인재들이 혜택을 받았다. 성종 때는 독서당도 지어 학문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배려했다. 한양에만 세 곳이 있었다. 옥수동 근처 한강변에 있던 동호당(東湖堂), 마포에 있던 서호당(西湖堂), 용산에 있던 남호당(南湖堂) 등이 그곳이다. 동호당은 이율곡이 특별휴가를 받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저술한 곳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영국에도 '독서휴가제'가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고위직 관료에게 3년에 한 번씩 한 달 가량 유급휴가를 줬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지혜와 통찰을 구하라는 취지의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이다.

어느덧 피서철, 휴가철이 다가왔다. 각종 쇼핑몰에서는 여름휴가와 바캉스 관련 용품을 선전하느라 바쁘고, 여행업계는 여름휴가철 여행상품 알리기에 분주하며,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휴테크'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휴테크'란 '휴가'와 '테크닉'의 합성어로 휴가로 생긴 여가시간을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창의성을 키우며 자기계발을 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휴테크'에서 가장 권장되는 방법은 독서이다. '진정한 휴식은 번잡한 일상을 떠나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보며 내일을 준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할 때, 평소 읽고 싶었으나 일에 쫓겨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 느긋하게 읽는 모습이야말로 '휴가의 백미(白眉)'라 할 만하다.

'주머니 속에 한 권의 책이 있는 사람은 백화가 만발한 정원을 갖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일상에 쫓겨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휴가는 좋은 책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고갈된 지력(知力)의 재충전'이라면 한해의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가는 요즘이 특히 더 중요하다. 문제는 휴가를 줘가며 독서를 권할 만큼 멋진 리더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기 휴가중 평소 눈여겨 봐뒀던 책을 몰아서 읽는 수밖에 없다. 독서휴가, 또는 '북캉스'를 계획해 보라는 얘기다. 교통체증에 적지않은 비용, 휴가 후의 허탈감 등을 피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추스르는 방법으론 그만한 게 없을 것이다.

선현들은 여행과 휴가를 책읽기의 방편으로 많이 활용했다. 『청장관전서』에는 이덕무가 구양수의 문집을 싸들고 북한산으로 향하는 친구 이중오에게 써준 글이 실려 있다. 글귀 중에 '산수 중에서 맑고 시원하기로 북한산만한 게 없으니, 구양수의 글을 읽는 데 북한산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는 말이 눈길을 끈다.

연암 박지원은 사촌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옷을 벗거나 부채를 휘둘러도 불꽃 같은 열을 견뎌내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할 뿐'이라며 '책읽기에 착심(着心)해 더위를 이겨나갈 것'을 권고한다. 조선 중기 문신 윤증이 쓴 「더위(暑)」라는 시에는 옛 선비들의 여름 독서 모습이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구나.'

책읽기를 뜻하는 한자말에는 '독서' 말고도 '간서(看書)', '피서(披書)' 등이 있다. '독서'가 보통 정독이나 숙독처럼 정신을 몰두해 하는 책읽기를 말한다면, '간서'나 '피서'는 가벼운 책읽기에 가깝다. 철학, 역사서와 같은 딱딱한 책보다는 소설, 추리물에 어울리는 독서법이다. 이렇다보니 무더운 여름철의 책읽기는 독서보다는 '피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휴가로 주어지는 여가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는 땅도 봄, 여름, 가을 열심히 일을 하고 겨울에는 휴식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듯이 배움을 통한 휴식 과정을 거쳐야만 지속적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이번 여름에는 인파가 북적거리는 복잡한 휴가보다 '쉼'과 '회복'을 주제로 책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휴가가 됐으면 한다. 특히 요즘처럼 상처 입은 이웃, 힘들어하는 이웃이 많을 때 고개 돌리고 흥청망청할 게 아니라 자신을 재충전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름 휴가철마다 '읽을 만한 책', '권장 도서' 목록이 나오지만, 여행 가방에 책을 고이 챙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친구가 올린 맛집 사진도 즉시 확인하고, 최신 연예 소식도 알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수영복과 자외선 차단제 사이에 책 몇 권은 꼭 넣어갔으면 한다.

'책은 배반을 모르는 인간 사상의 친구'라고 한다. '사상의 친구'와 그래도 가깝게 할 수 있는 때가 휴가철이다. 일상의 권태를 씻어내는 것도 피서길에서다. 가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활짝 넓히는 일에 시간을 내보자.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고향집 툇마루나 피서지 옆 느티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읽는 재미. 매미 소리, 솔바람 소리와 함께 자연을 벗삼아 책장을 넘기는 재미. 이번 휴가엔 이런 멋진 '여름 풍경'을 그려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