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스크 문화
일본의 마스크 문화
  • 독서신문
  • 승인 2015.06.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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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에세이'
▲ 이하빈 작가

[독서신문] 마스크는 자신을 위한 방어용인가, 타인을 위한 배려용인가. 도쿄에서는 공공장소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쿄 시민 아니 일본인들은 마스크와 아주 친하다. 도쿄 생활 10년을 넘은 우리 집에도 어느 새 마스크가 상비약처럼 서랍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 도쿄로 이주했을 때 여러 가지 행정 절차가 많았다. 어린 딸이 있으니 가장 급한 게 의료보험 가입이었다. 4월초였다. 구청에 들어가서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청 직원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민원을 볼 수 있을까. 마스크를 쓰고 시민들을 대하면 실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 불쾌하기까지도 했다.

그 후 얼마가 지나 의료보험증을 들고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맞히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이었다. 접수처 직원들과 간호사는 물론 의사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무슨 전염병이 돌고 있나 싶어 나도 서둘러 병원 매점에서 마스크를 구해 딸과 함께 썼다. 안경에 낀 입김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이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서툰 일본어 탓인지 마스크 너머로 나오는 의사의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진료실에서 마스크를 벗지는 못하고 살짝 턱 아래로 내리고 말았다. 나중에 일본인들의 마스크 착용 습관을 알고는 혼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도쿄 생활 초창기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문화 중 하나가 마스크 문화였다. 우리 같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쓰지 않는 마스크를 거의 매일 쓰고 다니는 일본인들을 마주치는 것도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도 불편했다.

제법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다니던 일본유치원에서 안내장이 날아왔던 기억이 난다. 매일 공원에 산책을 나가는데 우리 아이만 마스크를 가져 오지 않았다며 마스크 지참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로 마스크는 상비약 같은 존재가 돼, 세제나 화장지를 떨어지기 전에 구입하듯이 마스크도 미리미리 박스로 사 둔다. 지금도 아침마다 학교 가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챙겨준다.

일본에서는 겨울철 수개월 동안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한 숨을 돌릴 즈음이면 여러 종류의 봄 꽃가루가 기승을 부린다. 그리고 찬바람이 돌면 일찌감치 독감 예방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마스크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 정도다.

일본 약국에는 사시사철 다양한 종류의 마스크가 수북이 쌓여 있다. 캐릭터가 그려진 것부터 미세먼지 차단용까지 크기별, 남녀별로 다양한 마스크들이 진열대에 빼곡하다. 해마다 신제품 마스크가 약국에 등장해서 용도에 맞는 마스크를 고르는 일도 쉽지 않다.

병원은 물론 극장, 슈퍼마켓 등 일반인들이 흔히 출입하는 공공장소에서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필자 역시 마스크 쓰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여전히 불편하지만 타인에게 괜한 불안감을 주기 싫어서 '위험한 시기'가 오면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한국에서 메르스로 인해 전국민이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한 통역 아르바이트생이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귀가조치 당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마스크를 쓴 채 관광객을 안내한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 아르바이트생은 오히려 마스크를 쓰는 게 관광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귀가조치가 아니라 칭찬을 해줬어야 하는데….

/ 도쿄(일본)=이하빈(르포 작가, 동경싱싱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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