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미디어셀러
'양날의 칼' 미디어셀러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5.06.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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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작금 출판시장의 키워드는 TV나 영화 같은 미디어의 홍보효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일컫는 '미디어셀러'다. 'TV셀러', '스크린셀러'를 통칭하는 용어다. 교보문고 집계 2014년 종합베스트셀러 1, 2위에 오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미 비포 유』가 대표적이다.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5위 안에도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꾸뻬씨의 행복여행』,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두근두근 내 인생』 등 6종의 미디어셀러가 포함돼 있다. 지난해 말 드라마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만화 『미생』은 누적 판매부수 200만 부를 돌파했다. 역시 미디어셀러 약진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6월 11일 발표한 6월 2주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 세트』가 단숨에 6위까지 올라섰다. 반디앤루니스의 6월 2주차 순위에서도 88단계 상승해 종합 12위에 올랐다.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 세트』는 KBS 2TV 주말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극중 백승찬(김수현 역)이 신디(아이유 역)에게 선물한 책으로, 두 주인공의 마음을 데미안 속 구절로 표현해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아이들과 아빠들의 제주여행기를 담은 사진집인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우린)도 84단계 올라 16위를 기록했다.

미디어셀러가 베스트셀러가 된 사연은 제각각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미생』은 원작을 영상화한 뒤에 비로소 원작이 뜬 경우다. 『창문 넘어…』는 2013년 출간 직후 잠시 반짝하다 곧 집계 순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2014년 영화의 개봉과 함께 되살아나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정상에 올랐다.

『미생』은 웹툰(인터넷 웹에 게재되는 만화)으로 시작했다. 이어 이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뜨자 만화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미 비포 유』는 출간 직후엔 독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TV 책을 보다'에 소개된 뒤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미국에서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소개된 책이 종종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다 죽어가던 책들의 운명을 반전시킨 이러한 사례들은 영상 미디어의 '강력함', 그리고 역설적으로 책의 '미약함'을 방증한다. 

미디어셀러는 출판계에 '양날의 칼'이다. 지난해 영화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러자 『코스모스』 같은 우주과학서 판매가 늘었다. 이는 영상 미디어와 책의 선순환 사례다. 그러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PPL(간접광고·Product PLacemen)은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PPL을 진행할 수 있는 출판사가 소수에 불과해 '출판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출판인들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활자 텍스트와 영상 텍스트의 헤게모니가 역전됐다는 사실이다.

TV가 보급되기 전, 한국 영화의 전성기엔 문학작품을 영상화한 이른바 문예영화가 유행했다.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소설가 이범선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런 전통은 TV시대에도 이어졌다. 1980년대 KBS의 'TV문학관'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콘텐츠의 핵심은 단연 종이책이었다. 영상물은 책의 파생상품이었을 뿐이다. '예술적 성취의 근원이 책'이라는 점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계가 완전히 역전돼 영상으로 성공한 콘텐츠가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처럼 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나 '응답하라 1994'와 같은 인기 드라마가 속속 소설로 재탄생했다.

한국문학의 위기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2014년은 '소설의 해'라고 불린다.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10위권 내에 소설이 6권이나 포진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소설은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유일하게 턱걸이했을 뿐이다. 소설 분야 통계에서도 상위 15위권 내에 한국 소설은 『정글만리』에 김진명의 『싸드』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추가된 게 전부다. 한국 작가가 쓴 문학 책은 안 팔리고, 안 팔리니 창작열이 식기 마련이고, 그러니 더 안 팔리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전통적으로 출판은 규모나 역할 면에서 콘텐츠산업 전체의 맏형격인 역할을 점해왔으나, 지난 2011년 매출 21조 2,446억원을 정점으로 줄곧 매출 감소 추세를 보이며 침체 국면이다. 콘텐츠 산업 전체가 지속 성장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출판계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운다. 이 같은 위축 분위기 속에서 미디어셀러의 득세를 바라보는 출판계 시각엔 '반가움'과 '착잡함'의 반응이 혼재한다. 

미디어셀러 영향력의 확산은 바야흐로 영상물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즉 텍스트가 영상물의 원천이 되는 시대를 지나 영상물이 인쇄물의 매출을 좌지우지함은 물론 그 창작의 동기마저 부여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대중들의 미디어 및 스낵 컬쳐(Snack Culture, 웹 드라마·웹툰 등으로 짧은 시간 동안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도서가 미디어의 파생 상품처럼 전락하고 있다"면서 "보다 깊은 지성을 다루는 인문학 등 도서들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화-드라마화를 겨냥한 글쓰기'가 만연하고 있는 것도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오늘날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바꿀 목적에서 소설에 달려들고 있다. 소설에서 본질적인 것은 오직 소설에 의해서만 말해질 수 있다. 자신의 소설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것을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는 완고한 '소설 불멸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미디어셀러는 기나긴 불황에 신음하는 출판계를 살리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영상의 힘에 의존하다보면 자칫 책이 종속변수로 추락할 수도 있다. 책과 영상의 윈윈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본연의 힘'을 지키려는 밀란 쿤데라의 말은 가슴 속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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